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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산책] 금융권 홍보담당에게 하는 부탁

최종수정 2011.12.19 15:58 기사입력 2011.12.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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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민수가 그려준 캐리커처다.

아들 민수가 그려준 캐리커처다.

한 여름 파리 떼처럼 연말이면 어김없이 출몰하는 보도자료의 한 유형이 있으니, 최고경영자(CEO)의 세밑 선행(善行)에 관한 것이다.

형태는 천차만별이지만 크게 보면 "올 한해 돈 버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연말쯤 되니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생겼다. 그래서 (내 돈에 회사 돈 듬뿍 얹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썼다(또는 쓰겠다)"는 내용이다.

세상사 늘 그렇듯 '내 돈'이 단 한 푼 안 섞였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돈이 이동하는 건 '사실'이기에 훌륭한 기사거리임에 틀림없다.(기자는 계절에 무관하게 '사실'에 굶주려 있고, 특히 경제기자는 '돈의 이동'에 민감하니까.)

이런 연유로 연말이 되면 일선 기자는 물론 데스크들도 CEO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해진다.
그리고 내심 기대가 만발한다.
올해는 어떤 CEO가 어떤 식으로 돈을 이동시킬까? (독자들도 몹시 궁금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 금융 CEO들은 한 결 같이 머리에 비닐모자 눌러쓰고 김치 담는 사진을 찍어 보내 왔다.
양복입고 넥타이 메고 전방부대나 보육원에 가서 앞마당에 쌀 포대나 라면박스 쌓아놓고 억지로 웃음 짓다 어설피 찍힌 사진보다는 생동감 넘쳐 좋긴 한데 문제는 누가 주인공인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
고작 5×10 센티미터 사진 속에 서너 명이 똑같이 머리엔 비닐모자 쓰고, 양손엔 긴 고무장갑 끼고, 앞에 큼직한 비닐 앞치마 둘렀으니, 도대체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 구별조차 힘든 판국이다.
이 자리를 빌어 홍보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데, 앞으로는 비닐모자나 앞치마, 정 힘들면 고무장갑에라도 이름과 직책을 매직펜으로 써서 입혀드리라는 것이다.
'○○지주 ×××회장' 또는 '○○은행 ×××행장' 이런 식으로 말이다.
홍보효과도 극대화하고, 신문제작의 혼선도 줄이고, 일거양득 아닐까.(이런 게 바로 '창의적 홍보'라는 것이다.)

은행장들이 직접 김치를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추와 무 값은 계속 폭락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전국 주요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배추 가격은 상품(上品) 1포기에 평균 290원. 한 달 전에 비해 15.4%, 3개월 전에 비해 73.6%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 같은 시기에 1164원이었다고 하니 작년의 4분의 1 가격인 셈이다.
무도 마찬가지여서 kg당 평균 도매가격이 310원으로 3개월 전의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1년 전보다 73% 이상 싸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배추와 무를 밭에서 폐기하는 무자비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은행장에 이어 각 지점장도 '김장 대열'에 동참하면 어떨까 싶다.(격에는 안맞지만 '00은행 00지점장'이란 비닐모자 사진이 접수되면 최우선으로 신문에 게재할 용의가 있다는 점, 각 은행 홍보담당자는 유념해주시길...)

끝으로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 우리 집은 올해 김장을 두 번했다.
매년 아내와 그 언니들(넷이나 있다)이 시골에 모여 일종의 '축제' 형태로 김장을 해치우는데 지난달 배추 150포기를 김치로 담가 대전과 수원, 서울 등을 차로 오가며 대여섯 집이 나누더니 홀연 일주일 뒤 다 내다 버리는 것이었다.(밭이 아니라 애써 김치를 담아 냉장고에 일주일쯤 보관한 뒤 폐기한 것이다.)

우리 집에선 내가 그 악역을 맡았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한 통씩 꺼내 집밖의 음식물쓰레기통에 쏟고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꽤 무겁고 다른 사람 보기도 민망해 하루에 한 번씩, 그것도 밤에만 임무를 완수했는데 무려 일주일 걸렸다.
007 작전을 방불케 했던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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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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