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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충무로 거닐고 中무대 오르던 시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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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50주기 기념사업 '50년 후의 시인'

[Encounter]충무로 거닐고 中무대 오르던 시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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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평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이렇게 썼다.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열린 문학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이후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민음사, 1975), '김수영 전집 2-산문'(민음사, 1981)에 수록됐다.
그는 이 평론에서 시의 내용과 형식, 참여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시가 소설보다 모호하고 현실에 발 딛고 있지 않다는 주장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것, 글을 쓰는 것은 시인 김수영이 삶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책을 보지 않는 이들에게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건넨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시인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5~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다녔다. 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시인의 동생인 김수명 김수영문학관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오빠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만 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형제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었다. 오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 작품을 선별해 목차를 매겨서 내게 넘긴 것이 책으로 나온 게 1981년도 판 전집이다. 그 작업을 하면서 오빠의 작품이 조금도 손상이 안 가게끔 가감 없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넘기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오빠가 굉장히 작품에 신경질적이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김 관장은 김수영의 가치를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올해 초 민음사에서 시인의 미발표작과 미완성 초고 등을 더해 출간한 '김수영 전집 결정판'에 관해서도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오빠가 엄선해 시집에 이것만 실으라고 내게 줬기 때문에 이번에 발굴 작품 여러 가지가 보태져 새로 나온 것을 보니 본인이 일부러 전집에 안 넣고 싶다고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오빠가 넘겨준 작품은 그대로 (전집으로) 놔두고, 이후 발굴된 것과 기타 작품은 별도의 책으로 엮어서 연구에 보탬 되도록 분류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수영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경험했다. 한국전쟁 때는 후퇴하는 북한군에 징집돼 북으로 끌려가다 탈출했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이후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지냈다. 1948~1959년 사이에 발표했던 시를 모아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ㆍ춘조사)을 출간했다. 시집에는 시인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담겨있다.

1960년 봄을 김수영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다. 3ㆍ15부정선거와 4ㆍ19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김수영을 '저항 시인'으로 기억하는 작품들이 나온 시기다. 4ㆍ19 이후 그는 자유와 사랑에 대해 썼다. 군사정권에 의해 혁명이 좌절되는 것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져 자기풍자와 현실비판의 시들도 썼다. 그만의 색깔이 짙어갔다. 그의 문학을 단순한 저항의 차원을 넘어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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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기리는 사업이 풍성하다. 한국작가회의와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는 11월부터 '50년 후의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학술대회, 기념문화제, 문학기행, 학술연구서ㆍ회고집ㆍ문학지도 출간 등 사업을 벌인다.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그 동안 많은 김수영론이 쏟아져 나왔고 훌륭한 이론도 많지만, 아직 전집 정본이 확정되지 않는 등 연구 기초가 부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T.S 엘리엇의 평론 지침에 따르면 대표작만 고르면 되는 시인은 마이너, 전집을 봐야 그 시인의 전모가 드러나는 시인은 메이저다. 김수영은 우리가 가진 메이저 중의 메이저 시인이다. 우리 한국어가 아직 제한돼 있어 그렇지, 우리나라가 더 좋아지고 한국어 위상이 더 높아진다면 그는 우리가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인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다음 달 2∼3일 프레스센터와 연세대에서 김수영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같은 달 10일 마포중앙도서관 6층 마중홀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기념문화제'가 열린다. 17일에는 종로2가 생가지(현재 YBM 건물), 마포 구수동 자택(현재 영풍아파트), 도봉산 시비, 김수영문학관 등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행사도 열린다. 거주지들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다.

김수영이 중국 지린에서 거주할 때 공연했던 연극 장소 등도 찾을 예정이다. 기념사업회 기회위원인 김명인, 박수연 교수 등은 김수영이 1944∼45년 이주해 머문 중국 길림성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예전 지적도를 확인해 현장 조사를 하고 유족과 더불어 사전답사를 하며 풍문이나 잘못된 주소지로 전해지던 내용을 확인해 바로잡았다"며 "한 작가의 생애사를 공간과 결합해 재구성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기행"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학술대회의 성과를 모은 학술서적과 김수영을 문학적 텍스트로 삼아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 김수영과 함께 해방공간에서 함께 숨쉬었던 원로문인들의 글을 모은 김수영 회고록도 출간한다. 그 동안 묶이지 않았던 귀중한 김수영의 번역자료집도 선보인다.

김수영의 문학적 자취는 깊었으나 생은 허망했다. 그는 1968년 6월 15일 밤 귀갓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김동리, 박목월 등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 주축이 돼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도봉산 기슭에 시비를 세웠다. 시비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 시 '풀'이 새겨져 있다. 두 번째 연이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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