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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왜 지금 세종인가 … 연출가 김은영, "설득의 리더십 닮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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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포용력, 현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
업적 나열 지양…인간 이도의 삶 엿보고자
한글 창제의 뿌듯함 노래로 담아 선물

창작 뮤지컬 '1446'.

창작 뮤지컬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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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왜 지금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특출하거나 재능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대부이든 천민이든, 고려인이든 조선인이든 모두를 안고 가려 했던 세종의 포용력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아닐까요?"
'1446'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공연제작사 HJ컬쳐와 여주시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위인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해를 제목으로 내세웠지만 업적에 대해 구구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고뇌하고 아파하며 상처가 많은 인간 '이도'의 삶에 주목한다. 꼭두각시 왕 이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거듭나기까지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줄거리는 이렇다.

1418년, 태종은 방탕한 세자 양녕을 폐하고 서책에 빠져 사는 충녕을 세자로 세운다. 세자교육을 받지 않은 충녕에게 선위까지 해버린다. 하지만 태종은 충녕의 뒤에서 국사를 좌지우지하며 정치의 끈을 놓지 않는다. 평소 외척의 발호를 경계한 태종은 충녕의 장인인 심온을 따르는 무리가 늘자 사건을 조작해 심온을 죽이기도 한다. 장인의 억울한 죽음을 탄식하던 충녕은 아내마저 죄인의 딸로서 내쳐질 위기를 맞자 용기를 낸다. 결연한 자세로 아버지에게 맞서고 나서야 진정한 용상의 주인이 된다.

1446은 김은영의 첫 연출작이다.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으로 다양한 작품을 해왔지만 연출가로서는 첫 무대다. 연출가 김은영을 지난 8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막연하게 연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연출이 주는 무게감이 생각보다 컸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다. 배우와 음악, 소품, 안무, 의상, 음향 등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작품 하나가 무대에 오른다. 그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스태프들을 통솔하는 등 연출이 해야 하는 일이 엄청난 데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흘린 땀방울들이 모여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죠. 무식하게 덤볐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길에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어요."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연극에서부터 드라마,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많다. 1446을 만들면서 김은영이 처음부터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차별성과 독창성이다. 찬양 일색이 되거나 업적을 나열하는 것 같은 상투적인 작품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러기 위해 '세종이 무슨 업적을 이뤘는지'가 아니라 '왜 그것을 했을까'에 집중했다. 극 초반에 20분을 할애해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꼭두각시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연출가 김은영

연출가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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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고증에 집중했겠죠. 하지만 인간 이도의 실패와 역경, 삶에 주목하다보니 드라마적인 선택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장영실의 재해석, 전해운 캐릭터의 강조, 소헌왕후의 역할 등이 그런 예죠."

소헌왕후는 역사상 내명부를 가장 잘 다스렸다는 세종의 아내다. 실제로는 세종대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세종의 죽음을 옆에서 지킨다. 김은영은 인간 세종의 말년이 쓸쓸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읽어주는 '맹자'를 들으며 눈을 감는 모습은 세종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곡(나랏말싸미)을 붙여 한글이 널리 퍼진 모습을 그린 장면에 세상을 떠난 세종을 등장시킨 이유도 비슷하다.

"세종대왕이 이렇게 한글이 널리 쓰이는구나 하는 걸 느끼고 행복해 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제작진이 영릉으로 답사를 갔을 때도 이 노래를 불러드렸어요."

음악은 김은영이 특히 신경 쓴 부분이다. 사극이기 때문에 국악적 요소만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국악의 긴 호흡을 어떻게 현대적 템포감에 녹아들게 할지가 관건이었다. 무대 한편에 마련된 라이브 밴드는 건반과 드럼, 기타, 베이스 같은 현대적 악기를 주로 사용하되 해금과 대금을 이용해 한국적 음색을 어우러지게 했다. '조선을 위해'와 같은 반복되는 가사나 주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세종 즉위 초반에는 불협화음을 많이 썼다. 조선이 안정되면서 경쾌한 협화음이 흘러나와 분위기를 바꿨다.

1446을 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년이다. 캐릭터 표현의 섬세함과 배역에 녹아드는 배우들의 연기, 화려한 소품과 마치 군무를 보는 듯한 앙상블의 움직임 등은 초연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높다. 한국관광공사와 손잡고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해 자막 서비스도 제공한다.

"어느 나라나 왕이 있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세종이 강조하는 애민정신은 한국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사와 문화는 다르지만 이런 보편성에 주목했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김은영은 초보연출가지만 세종처럼 모두를 포용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대부들이 반대했을 때 세종대왕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했어요. 저도 그런 연출이 되고 싶어요.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는 과정이 조화롭게 이뤄지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정말 행복한 경험이죠."

1446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다음달 2일까지 볼 수 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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