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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덩샤오핑의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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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어려운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용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행동이 필요하다. 당사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이 야심차게 결정한 서울 방문이 소기의 목적을 이룰지는 그의 행동에 달려있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 아버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한국 대통령을 만났다. 김정일 전 위원장은 서울 방문을 희망하며 '때가 되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역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남북간의 커다란 장벽을 돌파하고자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결단은 그가 어떤 의지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속적 번영을 추구하겠다면 한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몇 번의 계기를 통해 김 위원장에 대한 한국 내 평가가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냉랭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상당수다. '북은 적'이라는 인식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불가역적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한국 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게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거리와 식당에서, 집단 체조 관람 후 만난 평양시민들로부터 받은 뜨거운 환대를 서울에서 기대하기는 힘들다. 곳곳에서 반대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수모도 당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내려와야 한다. 그래도 김 위원장은 와야 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의 롤모델이다. 덩샤오핑은 1979년 부총리 신분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하며 중국에 대한 미국민의 감정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덩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내려놓음이다.
10억 중국인을 이끄는 덩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로데오 경기장에 나타났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터'를 부르는 장면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프로농구 선수들과 악수하는 장면에서는 신장 차이가 너무 나 어린아이같이 보였을 정도다. 미국, 특히 자본주의 경제를 배우겠다는 각오가 아니었다면 어려운 행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덩은 포드자동차, 보잉, 우주박물관 등 미국 전역을 누볐다. 그리고 궁금증을 쏟아냈다. 덩은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민의 존경을 받은 이들에게는 경의를 표했다. 링컨 전 대통령 기념관을 찾아 헌화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묘지도 방문했다.킹 목사 묘지 방문은 미국 측 경호 관계자들이 반대했음에도 강행했다.

덩이 미국에서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다. 가는 곳마다 저항이 벌어졌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덩을 환영하는 연설을 하던 중에는 취재 기자가 돌연 시위자로 돌변했다. 숙박한 호텔마다 인근 도로는 대만 국기를 든 시위대들의 차지였다. 덩이 주도하는 개혁에 반대하는 골수 공산당원들의 항거도 대단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 미ㆍ중이 무역 분쟁과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미ㆍ러 관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러시아의 정상은 첫 미국 방문에서부터 일을 그르쳤다. 1959년 미국을 방문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전 공산당 서기장은 적대적 태도로 일관해 소련은 적이라는 이미지를 미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그 인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의 마음을 얻지 않고서는 김 위원장이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을 경험했다.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은 미국에서 열릴 가능성도 크다. 서울은 올해 김 위원장 외교의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외유 경험은 내년 신년 연설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덩도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돈만 잘 벌 수 있으면 좋은 체제'라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내놓았다.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서울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내놓을 내년 신년연설 '깜짝쇼' 2탄을 기대해 본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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