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북한과의 선언과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된 여러 번의 경험을 감안하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끝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과 상가포르 합의 이후에도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한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영변 핵시설의 가동과 제2, 제3의 핵물질 생산시설의 은닉, 장거리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설의 증축 등이 확인됐다.
물론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라는 신자주노선은 대의명분에도 맞고 주권국가의 통치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언급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대남 적화흡수통일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점증되는 현실의 급박함, 국제공조의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을 통해 북핵 폐기의 길을 만들겠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와 노력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신자주노선의 접근은 잘못이다.
신자주노선은 북핵의 위험성은 뒤로 하고 남북경제교류에 집중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북핵의 최대 위협국인 한국이 스스로 북핵 폐기보다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하면 할수록 북핵 폐기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이런 북한의 행보에 암묵적으로 동조 내지 협조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은 중국과 러시아다. 최근 확인된 북한 석탄의 한국 밀반입 문제는 우리 스스로 제재구조의 허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도 동조대열에 동참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광물금수조치를 통해 최대압박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가 몰고 올 후과가 두렵다.
최근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4ㆍ27 판문점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1년 이내 비핵화'를 제안하고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밝혔다. 1년이라는 기간은 북한이 비핵화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시점부터다. 미국이 1년이라는 기간을 강조한 행간에는 문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김정은에게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9ㆍ9절을 앞둔 김정은은 최대압박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재는 압살책동의 '강도적'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는 최대압박이 김정은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략은 인내의 외교(patient diplomacy)를 하지만 결코 시간을 질질 끌지 않을 것이며 북핵 폐기가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점이다. 미국이 8월에만 3차례의 대북 독자제재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최대압박은 북핵 폐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는 단단한 국제공조로 북핵 폐기의 충분조건을 완성해야만 북핵 폐기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국제사회가 최대압박에 동참하는 이유는 최대압박이 평화적 북핵 폐기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최대압박을 통해 선(先) 북핵 폐기, 후(後) 교류와 협력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즉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 가능성에 직면해야만 북한폐기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동구권의 개혁개방, 옛소련의 붕괴도 북한판 고난의 행군이 단초가 됐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결국 국제공조의 최대압박은 북핵 폐기를 통해 '4ㆍ27 선언'의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그래야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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