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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인문학vs자연과학, 결국 길은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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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인문학vs자연과학, 결국 길은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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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하다).' 철지난 유행어가 돼 버린 이 말에는 한국사회의 여러 모습이 담겨있다. 당초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문과와 이과로 나눠진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문·이과를 나눈 기준은 대개 하나다. 수학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 학문에 대한 고민 없이 선택한 이 같은 분리는 사회인이 돼서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는 수학 실력만으로 문·이과를 선택한 우리에게 학문적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를 설명하는 책이다. 서문에서 대학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소개하지만 전제는 취업이 아닌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선택했을 경우다. 독일사례에 편향된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네버엔딩 지식배틀'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10가지 주제를 두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의 우월함을 겨루는 과정이 흥미롭다.
논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문체는 가볍고 읽기 수월하다. 이 책의 저자인 아니카 브로크슈미트와 데니스 슐츠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주제로 '사이언스 파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니카 브로크슈미트는 역사와 독문학을 전공했고 데니스 슐츠는 저온물리학 박사다. 책 역시 이들의 팟캐스트를 듣는 것처럼 친근하게 서술돼 있다.

각 학문의 우월성을 논하며 풀어놓는 에피소드들도 눈길을 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전문가만이 다뤘던 주제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좌파 자유주의 성향의 평화주의자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옹호했고, 나치 성향의 사람들은 이를 부인했다. 자신들이 믿는 신념에 따라 상대성 이론의 옳고 그름을 논한 것이다. 찰리채플린은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면 이런 상황을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는 이유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는 이유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결로 전개되지만 궁극적으론 두 학문의 통섭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저자들은 긴 학문의 역사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분리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대표적 이과 학문으로 통하는 의학의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고대의 의사는 의술만 행하지 않고 수학, 철학,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학자들도 특정 학문 영역을 규정하기 힘든 박학자였다.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전반에도 능통했다. 문학가로 알려진 괴테도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화학, 광학, 색채론, 유리제조에 능한 르네상스인이었다. 뉴턴은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고 믿는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저자들은 마지막장을 통해 이러한 통섭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학문을 둘로 분리하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지난 세기에는 학문의 경계를 분리하려는 경향이 뚜렷했지만 이 경계는 무의미했다. 이제 그 간격을 다시 이을 때가 왔다. 가능한 가장 훌륭하고 차별화되고 완벽한 세계상을 반영하고 싶다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뜻이다. 물론 내 주장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 발전하려면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p.269)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이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아니카 브로크슈미트, 데니스 슐츠 지음/강영옥 옮김/항해/1만6000원>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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