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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올리고 박제하고…성범죄 영상 ‘죽음의 연결고리’

최종수정 2018.08.11 17:34 기사입력 2018.08.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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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등 불법촬영물 속 여성…정육점 고기처럼 품평의 대상
일단 한번 찍히면 사실상 삭제 어려운 구조
음란사이트, 불법촬영 올려 성매매·도박 광고료 챙겨
정부,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 연내 마련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 20대 여성 직장인은 최근 한 음란사이트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것을 확인, 관계 기관의 도움을 얻어 삭제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 또 다른 음란사이트에 자신의 영상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이어 소셜네트워크(SNS) 공간에서 무차별로 확산하는 것을 목격했다.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는 그녀의 얼굴과 눈 입술 목 어깨 등,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부위별로 품평하며 댓글을 달았다. 이 여성은 다시 관계 기관을 찾아 영상 삭제 요청을 했으나, 무차별로 확산하는 영상 규모 앞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성은 결국 직장도 그만두고 남들이 알아볼까 아예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등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찍고·올리고·박제하고·공유되고’ 이른바 ‘디지털성범죄’ 영상이 확산하는 구조다. 가해자는 성관계 중 또는 지하철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상대방 동의 없이 불법촬영(몰카)을 하고, 이후 음란사이트 또는 일부 웹하드에 이 영상을 올린다.
이 사이트들의 공통점은 거의 모두 서버가 해외에 있어 경찰의 추적이 어렵다는 데 있다. 이렇게 음란사이트에 올려진 몰카 영상은 이 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또 박제된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박제’란 몰카 등 불법촬영물의 캡처본 등을 말한다. 이렇게 박제된 캡처본은 각종 음란사이트에 다시 올라오고 또 확산한다. 경찰의 수사로 서버를 압수하고 관련 게시물을 모두 삭제해도 이렇게 박제된 게시물은 여전히 살아있다. 말 그대로 몰래 촬영된 내 신체 일부가 박제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전시 되는 셈이다.

확산은 소셜네트워크(SNS) 서비스 ‘텀블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 서비스의 경우 ‘몰카’로 검색할 때 쏟아지는 게시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에는 한 텀블러 이용자가 미성년 여성의 몰카를 인터넷을 통해 거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른바 ‘몰카 촬영물 매매’ 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문제는 피해 여성이 관계 기관에 신고해 이를 통해 삭제하는 시간보다, 확산하는 과정이 빠르다 보니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전혀 줄어들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렇게 빠르게 불법촬영물이 확산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돈’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였던 소라넷은 성매매업소와 도박사이트를 홍보하는 사이트로부터 광고료를 받아 운영됐다.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디지털성범죄 영상이 음란사이트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는 일종의 도구인 셈이다.

이후 경찰은 해외 경찰들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네덜란드에 있던 소라넷 서버를 폐쇄했다. 하지만 유사사이트가 독버섯처럼 우후죽순으로 퍼지고 있다.

실제로 소라넷 이후 ‘꿀O’이라는 음란사이트는 회원 42만 명, 하루 이용자가 50만 명에 달했다. 역시 소라넷과 마찬가지로 몰카 등 불법촬영물이 올라왔고, 심지어 회원들이 촬영해 올린 영상 중 가장 음란한 것을 투표로 선정한 뒤 1등에게 200만 원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 사이트 운영진은 5명으로 이들은 성매매업소 480여 곳의 광고를 싣고 매달 7000만 원가량의 광고비를 챙긴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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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검찰청에 따르면 2011년 1,523건 정도였던 피해 사례는 5년 만인 2016년 5,185건에 달하는 등 3배 이상 증가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몰카 등 영상물 삭제 요청 건수는 지난 2016년에만 7,235건에 달했다. 디지털성범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며, 당연히 피해자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불업촬영물 유통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조처를 촉구하고 있다. 음란사이트가 운영·유지될 수 있는 일종의 죽음의 연결고리를 차단하자는 취지다.

올해 3월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연구한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를 보면 ‘인터넷서비스사업자 조치 의무규정 신설’하자는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성폭력 영상물이 유통되는 웹하드, SNS 업체 등 온라인서비스사업자들이 음란물을 발견하는 경우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처를 하도록 의무규정을 신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 피해 촬영물 및 음란물 차단을 위한 필터링 조치, 금칙어 차단, 피해 촬영물 및 음란물 업로드·다운로드 차단 등의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업자에 대한 의무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정부는 불법촬영물 유통 등에 대해 더욱 신속하고 실효적인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불법영상물의 신속한 차단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대응팀’을 신설하고 긴급심의를 시행 중이다. 이어 영상물 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불법 유통 촬영물 DNA 필터링 통합시스템’을 올 하반기 내 구축할 예정이다.

디지털성범죄 가해자 처벌도 강화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개정안에 따라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등 피해가 막중한 촬영물을 유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만 처벌(벌금형 불가)하고, △그동안 처벌조항이 없었던 ‘자신을 촬영한 촬영물을 본인 동의 없이 유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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