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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주 52시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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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사는 장점을 들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있다. 아마 와이파이가 어디 가도 잘 된다는 게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바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업소가 너무 많으며 언제나 전화만 돌리면 치킨을 비롯해 음식배달이 가능하다고 꼽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자랑거리도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는 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2021년부터는 49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 추세가 확산된다면 야간 치킨 배달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한국이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선 근로시간 단축은 필수적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겐 소득보다 중요한 게 여가시간이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우리나라가 야심차게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하루 8시간 노동이 일찌감치 정착했다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세계 최장의 근로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한 것일까?
먼저 법정근로 시간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유럽은 30시간대를, 영ㆍ미ㆍ일은 주 40시간을 지정하고 있지만 연장 근로에 있어선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장 근로 시간의 한도를 두는 지의 여부다. 유렵연합(EU)은 1993년 연장 근로를 포함해 일주일에 평균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입법 지침을 만들었다가 2003년 평균 48시간을 유지하되 노동자가 원할 경우 초과근무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독일의 경우 하루 10시간, 1주에 60시간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영국은 법정근로시간은 48시간이지만 노사합의에 따라 주 60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과 비교하면 한국이 연장 근로시간 한도를 52시간을 정한 것은 후발주자로선 상당히 야심적이다.

법정근로(연장근로 포함)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탄력적 근로 시간제의 단위 기간. 미국, 일본, 프랑스 모두 단위 기간을 1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주에 60시간 연장 근로가 가능하지만 최근 6개월간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한한다. 계절별 노동 수요가 다른 기업 사정을 배려하려는 의도다. 반면 한국은 이번에 3개월로 정했다. 계절별 일감의 차이가 큰 현실을 감안하면 약간은 의욕이 앞선다는 느낌이다.

전통적으로 친기업 성향이 강하고 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근로 시간에 관한 법과 제도가 아주 단순하다. 1938년에 제정된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FLSA: Fair Labor Standard Act)은 1주에 40시간의 법정근로 시간을 규정하고 있을 뿐 연장 근로 시간의 한도를 정하지는 않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엔 1.5배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단서조항만 있을 뿐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도 1년이다. 가급적 규제를 적게 하는 대신 시장논리에 맡기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연장 근로시간의 제한이 없는 경우를 업종 중심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번에 26종에서 5종(운송 관련 4개 업종, 보건업)으로 축소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업종이 아니라 직종을 중심으로 연장 근로 시간의 예외를 두는 게 특징이다. 임원, 관리직, 전문직, 영업직의 경우엔 법정근로 시간이 따로 없다. 이른바 예외 직원(exempt employee)이다. 소위 화이트칼라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이 따로 없다는 얘기다. 이들 직종의 경우엔 근무시간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가 이른바 피로사회를 초래하고 삶의 질을 낮추고 있다는 점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절실하다. 장기적으론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법정 근로 시간과 관련한 한국의 제도는 유럽에는 못 미치고 미국과 일본보다는 앞선다는 점에서 현실을 앞서간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로사회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건 당위적 명제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의 대전제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길 바란다.

최성범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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