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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황의 법칙, '황의 철칙'으로 거듭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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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내몰린 KT 황창규 회장
ICT업계 '황의 법칙' 신화 주인공
정권 교체마다 수장도 바뀌는 잔혹사 끝내야
성과로 평가·임기 보장 '황의 철칙' 새로 쓸까

황창규 KT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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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법칙'. 반도체 메모리의 발전 패턴을 규정한 이 용어의 창시자 황창규 KT 회장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있다. 정치적 압박인가 적폐 경영인인가. 황 회장은 16년 전 자신이 만든 법칙을 넘어서는 새로운 철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신을 구속시키려는 영장이 접수된 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두문불출'했다. 두 종류의 해석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흔들림 없이 업무에 매진하는 것이다." "아무런 반응을 내지 않는 건 크게 격앙됐기 때문이다."

황창규. 현 KT 회장. 전 삼성전자 사장. 황의 법칙(Hwang's Law) 주인공.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중심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활약을 해낸 그가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의 두문불출이 무엇을 의미하든, 사정기관의 칼날에 대한 그의 대응법이 무엇이든, 이 사안은 우리 사회가 과거와 어떤 식으로 결별하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일종의 '획'을 의미한다.
일단 황 회장은 차분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그가 스스로 물러나길 압박하는 모양새라는 관측이 있지만, 현재로선 그럴 것 같지 않다. 일단 황 회장은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하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KT 고위 관계자는 "5G 주파수 경매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만큼 경영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황 회장의 근황을 전했다.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사장으로 근무하던 2002년, 그는 '황의 법칙'을 주창했다. "반도체 메모리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이 용어는 백과사전에도 실려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는 데 공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2014년 KT 회장직을 수락한 것은 아마도 마지막 승부수였을 것이다. 그는 황의 법칙에 이은 또 다른 신화를 통신업계에서 만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황회장은 2017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깜짝 선언을 했다. 세계 최초 5G 이동통신 시범서비스와 상용화를 이뤄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KT가 법인자금으로 국회의원 약 90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KT가 법인자금으로 국회의원 약 90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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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정권이 바뀌었다. 국정농단의 부역자로 지목 받으면서 교체설이 돌았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제 길을 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5G 시범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5G=코리아'라는 인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지난 18일 5G 주파수 경매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내년 3월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목표에만 매진할 때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 즈음 황 회장을 옆에서 지켜보던 KT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은 경찰 수사가 '압박을 통해 물갈이를 하려는 정치적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수사 와중에도 자신감을 갖고 경영현안을 챙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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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구속영장 카드로 그를 압박했다. 상품권을 현금화(깡)하는 방식으로 현금 4억4190만원을 조성해 19·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후원 계좌에 임금한 혐의다. 경찰이 KT 현직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2002년 민영화 후 처음이다.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보이던 KT도 영장 청구 소식에 크게 흔들렸다. KT 관계자는 "황 회장은 해당 건에 대해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으며 사실관계 및 법리적 측면에 대해 성실히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으로 황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된다. 이 사안을 둘러싼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앞선 CEO들이 정권교체 직후 예외없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이석채 전 회장은 연임한 지 1년8개월 만인 2013년 11월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나 이후 혐의는 무죄로 판명났다. 남중수 전 사장도 연임 8개월 만인 2008년 11월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며 사임한 바 있다.

물론 황 회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적폐경영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KT민주화연대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KT에서 적폐경영이 청산되고, 통신 공공성 실현이 진전되며 노동이 존중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황의 법칙이 탄생하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황 회장이 끝내 무혐의를 입증해냄으로써 정권의 전리품으로 취급받는 KT 수장 자리를 온전히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외압과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는 관행이 황 회장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황 회장은 자신이 세운 황의 법칙을 16년 만에 '황의 철칙'으로 진화시키며 인생 최대의 업적을 쌓게 될지 모른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황의 법칙이 권력의 구태를 이겨내 새로운 KT,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선사할지. 혹은 정경유착의 달콤함에 빠진 미스터 플래시(Mr. Flash)의 몰락을 우리는 씁쓸하게 지켜봐야 할 것인지.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 사회, 정치 그리고 기업은 황창규 이전과 이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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