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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석의 시네 라티노]자신의 존재를 지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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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칠레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배연석 객원기자

배연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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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개봉한 ‘판타스틱 우먼’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남미 감독인 세바스찬 렐리오의 작품으로 올해 골든 글러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칠레 영화로는 처음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특정장르에 속하지 않는 스릴러이자 멜로드라마이며, 칠레사회의 리포트이며 유령영화라고 소개한 바 있다.

낮에는 웨이트리스로 밤에는 재즈바 가수로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마리나’는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뻘 같은 늙은 애인 ‘올란도’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날 밤, 함께 잠든 올란도가 급작스럽게 통증을 호소하고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만 동맥류 증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 후 그녀를 의심하는 경찰들의 강압적 태도와 올란도 가족들의 차가운 냉대, 주변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슬퍼한 겨를도 없이 느껴지는 수치심과 공포, 분노에 맞서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나가는 마리나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소재를 다루지만 이구아수폭포가 나오는 오프닝 시퀀스와 고전영화를 재현한 몇몇 장면들의 영상미는 독창적이며 아름답다. 특히 전설적인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명곡 ‘Time'을 포함한 OST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주인공 마리나를 연기한 ‘다니엘라 베가’는 실제 트랜스젠더이며 인상적인 연기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첫 트랜스젠더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판타스틱우먼’과 전작 ‘글로리아(2013)’
중년 여성의 사랑과 공허함에 대하여…….

판타스틱우먼

판타스틱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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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의 전작 ‘글로리아’ 역시 여러 영화제를 통해 인정받고 많은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은 영화이다. 50대 후반의 ‘글로리아’는 10년 전 이혼한 후 홀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성인이 된 두 자녀는 자신들의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그녀는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자주 찾는 중년 싱글클럽에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게 유일한 낙인 그녀에게 어느 날 ‘로돌포’라는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건다. ‘늘 그렇게 행복하세요?’

생뚱맞기도 한 그의 첫 마디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별로 행복하지 않은 그녀에게 그 말은 반대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로돌포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기게 되지만, 자신에게만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로돌포는 성인이 되었어도 직장도 없이 그에게 의존하는 철없는 두 딸과 능력 없는 전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기에 불만이 쌓인다. 아들의 생일날 가족모임에 로돌포를 소개하러 데리고 간 글로리아는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로돌포 때문에 가족들에게 난처한 상황을 만들고 갈등은 폭발한다.
그날 이후로 그를 외면하지만 로돌포의 끈질긴 구애에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는 자신의 가족들 때문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함께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로돌포는 또 다시 같은 이유로 사라져 버린다. 혼자 버린 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글로리아는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술에 취하고 술김에 낯선 남자와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뜬금없이 해변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이 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자책하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 온 그녀, 영화 초반부에 항상 자신의 아파트에 와 있던 고양이를 징그럽다고 내 쫒아 던 것과는 다르게 보살핀다. 그리고 로돌포를 찾아가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데…….

영화 ‘글로리아’는 정서적이고 성적인 만족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이 결국엔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그래도 나는 멋지게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받는 영화인 듯하다. 아마도 그건 중년여성뿐 만이 아니라 성별의 구별 없이 나이의 제한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싱글들의 고민은 아닐까? 그리고 그 감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담은 이 영화가 국적 불문하고 세계의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사랑받게 된 이유인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파티 장에서 자신의 이름과 같은 노래인 로라 브레이건의 올드팝 ‘글로리아’를 커버한 노래가 신나게 나오면서, 그녀가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일어나 무대로 나가 미친 듯이 막춤을 추며 진심으로 즐기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 왠지 저절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한다.

글로리아! 영광의 이름이여~ 글로리아! 싱글의 인생이여~

배연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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