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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남방을가다⑤]美와 中사이의 '줄타기 외교'…패권경쟁 무대가 된 아세안

최종수정 2018.04.17 14:25 기사입력 2018.04.17 11:40

기회의 땅 '新남방'을 가다 <5>괄목상대 아세안(하)

과거 미 우방이던 필리핀 친중모드
공산권 베트남은 미와 협력 강화
중, 태국·미얀마 연계 수송로 확대
미, 인도·호주와 함께 미 견제 전략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속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나섰다. 경제 발전 수준이나 정치 상황이 각각 다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각국은 미국 또는 중국 사이에서 묘기에 가까운 외교를 요구받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 호주까지 아세안에 공을 들이기 시작함에 따라 아세안의 지정학은 한층 복잡해졌다.

◆친중 필리핀(?)과 친미 베트남(?)= 최근 동남아에서는 필리핀과 베트남의 외교가 이목을 끌었다. 미국의 오랜 우방이던 필리핀은 중국을 향해 달려갔고,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임에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중국에 공을 들였다. 필리핀이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구애를 펼쳤다. 특히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PCA 승소 당시 미국의 승리였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미국의 오랜 우방이자 당사자인 필리핀은 중국과 손을 잡았다. 이후 두테르테 대통령은 영토 분쟁으로 악화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며 중국의 입장을 거의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두테르테의 이런 전략은 결국 통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원조와 관광객 모두 2년 사이에 큰 폭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령 2015년 중국인 관광객 49만명이 필리핀을 찾았지만 지난해에는 96만8000명으로 거의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직접투자나 경제 원조 역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의 부족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해 중국의 투자를 요청하며 적극적인 친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대로 같은 공산권인데도 중국과 거리 두기에 나선 베트남이 있다. 베트남 다낭항에 지난달 5일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기항했다. 칼빈슨호 입항의 이면에는 중국과의 영토 분쟁 속에서 미국의 손을 잡게 된 베트남의 고민이 있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남중국해 일대의 자원을 필리핀과 함께 탐색하기로 합의하자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베트남이 미국과 손잡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겪은 뒤 미국, 호주, 인도 등과 손을 잡는 등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욱이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 개선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됐다. 그 결과 2016년 오바마 정부는 베트남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로 하는 등 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 아세안 사로잡아= 최근 중국은 경제 성장을 희망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를 통해 동남아의 지정학을 바꾸고 있다. 육로를 보면 중국은 쿤밍과 태국의 방콕을 잇는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해상로에서는 미얀마 최대 항구인 차우퓨항에 가스관을 잇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를 희망하는 중국이지만 그동안 경제 성장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원유 확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중동산 원유를 수입할 때 매번 말라카해협을 거쳐야 했는데 이는 중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혀왔다. 미국이 전략적인 이유나 지정학적 갈등을 문제 삼아 말라카해협 등을 봉쇄하면 중국 경제가 치명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일대를 둘러싸고 중국이 인공 섬 등을 설치하며 공을 들이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상 수송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원유와 무역 수송로 문제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중국은 인권 개선, 민주주의 확대 등의 요구 조건 없이 경제적 지원과 SOC 투자에 나서면서 아세안 대륙부 국가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재, 군부 정권 등으로 서방 세계와 접점을 찾지 못했던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 성장 등을 도모할 수 있었다.


◆美ㆍ印ㆍ豪, 중국을 억제하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2월 캘리포니아주 서니랜드 내 휴양지에 아세안 정상들을 한꺼번에 초대하는 등 아세안 외교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투자ㆍ교역 확대 등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TPP를 탈퇴하는 등 아세안 문제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이 전략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내놓은 개념으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을 자유로운 항해와 비행의 공간으로 규정하고 무역과 안보 협력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후 인도와 호주가 아세안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실제 인도는 지난 1월 인도 헌법 제정일인 '공화국의 날' 60주년 기념행사에 아세안 10개국 정상을 한꺼번에 국빈으로 초청했다. 인도가 얼마나 아세안에 공을 들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도는 동남아를 향한 이런 일련의 노력을 '액트 이스트(Act East)'라고 명명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아세안 10개국 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서 '항해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해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인도가 이처럼 아세안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도 역시 지난해 미얀마와 태국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인도에서 미얀마를 거쳐 태국을 잇는 고속도로를 기반으로 아세안과의 유대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호주 역시 아세안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호주는 지난달 18일 시드니에서 처음으로 호주-아세안 회의를 개최했다. 호주와 아세안은 '시드니 선언'이라는 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성명에는 중국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 훈련 문제가 거론돼 중국의 팽창에 대한 견제의 메시지가 담기기도 했다. 특히 이번 회의 전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호주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의 아세안 가입은)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고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위도도 대통령은 당시 "(호주가 아세안에 가입하면) 지역의 안정성, 경제적 안정성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이 확실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언급한 점이 시선을 끌기도 했다. 호주는 이 같은 언급에 반색하며 아세안에 참여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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