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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가정의 상처받은 아이들…또다른 학대 '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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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준비된 가정, 안전한 미래' <8>친부모와 새부모 사이의 자녀

전체 혼인 중 재혼 비중 21.9%…동거가정 포함땐 더 많아
새부모에게 폭력·폭언 당해도 친부모 행복 위해서라면…
한쪽 부모에 버림받은 상처, 새가족과의 갈등·무관심에 두 번 버려지는 충격
재혼가정의 상처받은 아이들…또다른 학대 '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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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김영기(21) 씨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빠는 새엄마와 재혼했다. 영기씨가 세살 때 집을 떠난 친엄마는 일년에 한두번 전화통화를 할 뿐 그다지 애틋한 정이 없던지라 새엄마가 생겼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다. 새엄마는 늘 친절했고,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혀줬다. 하지만 5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영기씨에게 유학을 권했고, 내키지 않은 유학길에 올랐던 영기씨는 중국과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외롭고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다 결국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한 영기씨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대학에 진학하며 사실상 독립했다. 영기씨는 "새엄마는 나에게 늘 온화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셨고 우리는 적어도 겉으론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이었다"며 "하지만 유학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고, 아빠조차 새엄마와 잘 지내기 위해 나를 멀리 보내버렸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폭행이나 폭언만이 학대는 아니다. 어린 자녀에겐 무관심이나 방임 또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부모 중 한쪽만 함께 사는 이혼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과 달리 온전한 가족의 형태를 갖춘 '재혼 가정'은 보통의 친부모 가정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고통도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445건으로 2011년 32만9087건 이후 6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0년 전인 2008년(32만7715건)과 비교하면 19.3%나 감소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조(粗)혼인율)는 5.2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저였다.

혼인 자체가 줄면서 이혼 또한 2008년 11만6535건에서 2017년 10만6032건으로 9.0% 줄어들었다. 조이혼율은 2.1건으로 이 역시 1997년(2.0건) 이후 최저였다. 유배우 이혼율(배우자가 있는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4.4건으로 전년과 유사했다. 통계만으로 단순 비교하면 지난해 전국에서 26만4000여쌍이 결혼을 하고, 이 수치의 40%에 해당하는 10만6000여쌍이 이혼을 한 셈이다.

재혼의 감소 폭은 더 커 10년 전 7만7587건에서 지난해 5만7791건으로 25.5%나 급감했다. 전체 혼인 중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21.9%였다. 2005년 전국 혼인 31만4304건 가운데 재혼이 25.3%(7만9447건)을 기록했을 당시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 다섯 집 중 한 집은 재혼 가정인 셈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재혼 가정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연령별 이혼율(해당 연령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에서 남자는 40대 후반이 8.6건, 여자는 40대 초반이 8.9건으로 가장 높게 나타나는 점에도 주목한다.

평균 이혼연령이 남자 47.6세, 여자 44.0세이고,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 이혼(31.2%)'에 이어 '5년 미만 이혼'이 전체 이혼의 22.4%를 차지하는 점을 놓고 볼 때 한창 청소년 시기인 자녀를 둔 부모의 이혼과 재혼이 상당히 많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이혼 10만6032건을 살펴 보면 자녀가 없는 경우가 절반인 5만4383건이었지만, 자녀가 1명인 경우가 2만6741건(25.2%), 2명인 경우 1만9662건(18.5%), 3명 이상인 경우도 3690건(3.5%)에 달했다.

문제는 이렇게 부모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기존 가족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게 되는 자녀들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같은 변화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구하지 않거나, 새로운 부모가 빨리 친밀감을 쌓고 싶어 과하게 통제에 나설 경우, 반대로 무관심하게 방치할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실제 재혼 가정의 사례를 조사한 연구해서도 자녀들은 새 부모나 의붓형제ㆍ자매 간의 갈등으로 정신적ㆍ육체적ㆍ경제적 고통을 호소하지만 상당 수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 숨거나 숨겨진다. 이는 다시 가정 내 아동학대와 자살, 가출이나 학교폭력, 청소년 범죄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아진다.

숭실대학교 부부가족상담연구소가 지난해 재혼 가정에서 자란 자녀 13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스스로 가정에서 폭력이나 방치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24.1%에 그쳤다. 하지만 재혼 가정의 청소년 자녀들은 친부모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에 비해 공격성과 비행성향 정도, 우울ㆍ불안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고, 학교적응 면에서도 낮은 점수를 보였다.

'친부모의 재결합을 원하지 않는다(70.0%)'는 응답이 많은 것도 자녀 입장에서는 이미 부모들의 갈등과 이혼을 겪은 경험이 있고 그 안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재혼 가정마저 다시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새부모가 자녀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더라도 자녀는 친부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참고 견디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좋은 새부모를 만난 경우에도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난다. '아빠가 새엄마에게 잘 하는 것처럼 진작에 친엄마에게 잘했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텐데…'와 같은 마음이 싹트면 이후 새부모에 대해 냉담하거나 냉소적이 되기 쉽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 연구를 진행한 변복수 박사는 "재혼 가정의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잘못인 아닌 부부간의 불화로 한쪽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상태인데 이후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맡겨지며 떠돌거나, 새부모가 들어온 재혼 가정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경우 부모에게 두 번 버려지는 충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혼 가정에 대한 편견은 경계해야 하지만 이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사회적인 관심인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동거나 입양,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어날수록 이들 가정의 자녀에 대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변수정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부연구위원은 "우리사회가 특정 가정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부에게도 문제이지만 가족 내에 아동이 존재할 때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모든 아동은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 내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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