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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과 잠적’…성추문 폭로를 대하는 이윤택과 오태석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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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에 줄줄이 호명되는 거장의 민낯…과연 이윤택·오태석이 끝일까?

실험적 희곡과 이를 뒷받침 하는 탄탄한 연출력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연출가 오태석(78) 씨는 최근 잇따른 폭로로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지만, 잠적을 통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실험적 희곡과 이를 뒷받침 하는 탄탄한 연출력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연출가 오태석(78) 씨는 최근 잇따른 폭로로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지만, 잠적을 통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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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 삶을 연극이라, 인간을 배우라 지칭한 바 있다. 연극계 변방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연출가 이윤택은 자신을 겨냥한 성추행·성폭행 폭로에 고개는 숙이되 결단코 물리적 성폭력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그 발언이 나온 기자회견은 리허설을 거친 ‘무대’였다. 네티즌들은 그런 그를 두고 ‘인생이 연극’이라며 분노 섞인 조롱과 비난을 쏟아냈다.

반세기 동안 연극 연출의 대가로 호명되며 무대와 강단을 바삐 오갔던 연출가 오태석은 자신의 극단 작품에 참여한 배우,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과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제기되자 대책 마련을 논의하다 이내 잠적하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연극계 ‘미투(me too)’ 운동의 단초가 된 거장들의 성추문은 이내 불쌍한 표정을 위한 기자회견 리허설과 대책강구 중 잠적으로 이어졌고, 갈 곳 잃은 피해자들의 분노는 법적 대응(이윤택 피해자)과 역설적 침잠(오태석 피해자)으로 표출됐다. 그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만큼 폭로에 대응하는 방식은 정확히 반비례한 셈이다.
뿌리 깊은 권위주의의 폐해

다수의 연극계 종사자들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국내 공연에 기술감독으로 참여해온 어경준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연출가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과오에 대해 자신의 욕망(아마도 육욕)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권위주의와 권력중독”이며 “동료 작업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그의 연출노트에 없었다. 그에게 스탭은 자신의 요구를 실행하는 노예였고, 그는 그의 권력을 탐닉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권위란 대체로 개인적 권위와 위치적 권위, 또는 근원적 권위와 의무적 권위로 나뉘는데, 업력(業歷)만 수십 년에 대내외적으로 높은 명망을 누린 이들의 제왕적 횡포는 배우와 제자를 자신의 권위 속에 존재하는 소유물로 인식하는 발상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극단이라는, 학교라는, 더 나아가 연극계라는 좁은 공간에서 동등해야 할 인간관계는 어느새 상위자와 하위자 간 계층 관계가 되었고, 권위자들은 폐쇄적 조직에서 구성원들에게 지배와 복종을 내면화해 복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끔 종용했다. 혹여 그 대상이 항거할 경우 인습과 절차에 대한 집착으로 그들을 짓누르는 한편 업계의 경직성에 기초, 이들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해왔다. 바로 이 권위주의가 곪고 곪아 오늘의 연극계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한 고발로 터져 나온 것이다.

변방 연극의 기수로 추앙받던 연출가 이윤택은 자신을 겨냥한 성추행·성폭행 폭로에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그 모든 제스처는 사전에 철저한 리허설을 거친 '작품'이었음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변방 연극의 기수로 추앙받던 연출가 이윤택은 자신을 겨냥한 성추행·성폭행 폭로에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그 모든 제스처는 사전에 철저한 리허설을 거친 '작품'이었음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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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이 사전에 철저히 연습된 ‘무대’였음을 폭로하며 스승 이윤택을 ‘괴물’이라 지칭한 연희단거리패 연출가 오동식 역시 지난해 국립극단 공연 당시 조연출 폭력 논란의 당사자로 또 다른 ‘작은 괴물’임이 드러났다.

현재 수많은 언론이 행적을 좇고 있는 연출가 오태석을 향한 ‘잠적’이란 표현은 어쩌면 약간의 오해일 수 있다. 그는 원래 휴대폰이 없는 사람으로, 극단은 물론 학교에서도 정해진 시간, 약속된 장소에 그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이었다고 그의 서울예대 제자들은 증언한다.

한편 논란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오 씨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서울예대 극작과 학생들은 학교 측에 그의 수업 폐강 여부를 물었고, 학과 조교는 오 씨의 제작실습 수업은 그대로 진행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고, 21일 서울예대 제56대 총학생회 ‘선’은 공식 SNS를 통해 ‘오태석 교수 해임 및 퇴출 요구 입장’을 표명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입장표명 요구 앞에 변명,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에게 과거 오 씨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을 그대로 되묻고자 한다.

“내가 남 앞에 선다는 게 무엇인지, 내 모자란 걸 갖고 인생을 꾸려가야 하니 관객에게 여쭈어보고 의논드린다는 심정이야말로 볼거리를 만드는 이의 자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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