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다는 것은 ‘참 이러고도 나라가, 사회가 잘 굴러왔구나’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어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언론이며 검찰, 경찰은 이 지경이 되도록 뭐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한데 토를 달기 어려운 이 적폐 청산이 어째 좀 불편하다. 새 정부 들어 일 년 가까이 진행된 데서 느끼는 ‘적폐 청산 피로증’ 탓만은 아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온갖 ‘혐의’는 흘러나오면서 ‘단죄’나 ‘청산’보다는 ‘망신주기’에 무게가 실린 듯한 인상을 주어서도 아니다. 청산의 목적인 적폐를 남의 일로 치부하는 듯한 자세가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적폐란 말 그대로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이를 쌓은 그 누군가는 지위든 세력이든 금력이든 여태 힘을 가졌던 사람, 이른바 기득권층이다. 새로이 득세한 사람은 미처 폐단을 쌓을 여유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새로 힘을 얻은 이들은 비난의 화살, 청산의 칼날을 홀가분하게 우리 아닌 그들에게 겨냥한다.
적폐 청산 필요하다. 거의 매일 언론이 터뜨리는 비리, 탈법을 보자면 ‘이게 나라인가’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청산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있다. 상대를, 즉 기득권층을 단죄하고 기성세대를 부정하는 것보다, 아니 그와 병행해서 다짐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 자정(自淨) 의지다. 그렇지 않고 청산의 목적을 ‘적폐’로만 타자화해서는 ‘신폐’를 더할 우려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너희는 그랬지만’하는 마음가짐이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정권이든 폐단이 쉬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예전에 그랬으니’ ‘너희가 그랬으니까’하는 자세다. 전자는 관행으로, 후자는 앙갚음으로 종종 합리화된다. 그 결과 폐단이 끊이지 않거나,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청산’의 빌미를 준다.
그래서는 안 된다. ‘청산’은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너희는 사리(私利)를 챙겼지만 우리는 손해를 보더라도…’하는 자세 말이다.
‘인막퇴어산이퇴어질(人莫?於山而?於?)’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회남자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라 개미둑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이다.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사소한 것부터 챙겨야 한다는 경계의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니 ‘적폐 청산’이란 맑고 높은 명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리 나눠먹기’나 ‘내로남불’부터 경계해야 한다.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자세로 일관하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될 테니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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