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에서 지난 2009년 이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반(反) 알코올 켐페인'의 영향으로 최근 5년새 술 소비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서도 2007년 대비 30% 이상 술 소비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드카의 나라'라 불리며 전 세계 술 소비량 1위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에서조차 '술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술 소비량이 높은 다른 동구권 지역에도 변화가 나타날지 지역 주류업계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흔히 '술의 나라' 라고까지 불리는 러시아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유럽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러시아는 평균 5리터 정도 술 소비량이 높다고 알려져있다. 이는 혹한기 체온 유지를 위해 고대부터 술을 먹어야만 했던 이유와 함께 술에 관대한 문화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2011년까지 맥주와 같이 보드카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술은 주류로 판매되지 않고, 음료로 판매됐다. 신분증 없이 아이들도 쉽게 살 수 있었다.
흔히 '멘델레예프 주기표'로 유명한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사진. 그는 제정 러시아시절인 1894년, 계량청 국장으로 있으면서 보드카 도수를 40%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이처럼 2009년, 푸틴 대통령의 강경한 반 알코올 정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러시아는 보드카에 몹시 관대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경우엔 보드카 중독이라 국가 정상회담을 망친 사례도 꽤 많다. 1994년, 독일에 국빈방문했던 옐친 대통령은 베를린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환영 음악회에서 갑자기 술에 취해 단상에 올라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을 뺏아서 본인이 지휘했고, 이것이 독일 전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달 뒤에는 미국 방문 후, 정상회담을 위해 아일랜드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보드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비행기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아일랜드 총리 부부와 고위관리들이 군 의장대까지 도열해 기다리다가 결국 부총리가 나와서 회담을 했다. 아일랜드와의 관계는 당연히 매우 악화됐다. 1995년,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백악관 앞에서 팬티만 입고 택시를 잡으려다 경호원에 붙잡히는 등 보드카로 인해 갖가지 외교분쟁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내에서는 우리 대통령이면 저정도는 마셔야한다는 여론으로 질책보다는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옐친 행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출현한 푸틴 행정부는 술을 러시아를 망치는 독으로 보고 매우 강력한 반 알코올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주류세를 33% 인상하고, 길거리 음주를 금지하고, 밤 11시 이후엔 상점에서 술을 팔지 못하게 하는 등 규제들을 잇따라 만들고 있다. 규제들이 점차 위력을 발휘하면서 러시아의 '술 권하는 사회' 분위기도 그나마 조금씩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완전 '금주령'은 못내리고 있어 러시아의 음주 세계1위 타이틀은 한동안 더 지속될 전망이다. 구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쵸프가 금주령을 한번 내렸다가 소련이 완전 붕괴되는 상황을 겪은 이후, 러시아 정치권에서 금주령을 내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로 여겨져있기 때문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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