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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기자보다 시민들이 먼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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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영국 런던에서의 6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마지막 저녁식사를 즐기겠노라며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불금'을 맞은 시내는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과 조명이 반짝였고, 상점마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막 지났을 무렵 내가 머물던 집 주인이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다급히 위치를 물어왔다. 옥스포드스트리트에서 테러가 난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나는 지하철로 2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곧바로 BBC 홈페이지에 접속해 뉴스 속보를 체크했다. 시민들이 지하철역 인근에서 총성을 듣고 놀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고, 경찰 당국은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에 지하철역을 폐쇄하고 현장을 조사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같은 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테러의 공포에 맞선 시민들이 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 인근 건물 높은 층에 있었던 누군가는 사람들이 놀라 소리 지르며 달아나는 모습을 핸드폰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는 전세계 TV 뉴스를 통해 잇따라 보도됐다.

어떤 이는 비좁은 상점 지하 공간에서 시민들이 대피중인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친구가 지금 버버리 매장에 대피중이다", "뷰몬트호텔은 공포에 떨고 있던 행인들까지 몸을 피하도록 보호해주고 물도 나눠주고 있다"고 트윗하자 또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리지 말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를 담은 수많은 트윗들 속에는 기자보다 더 예리한 눈도 있었다. 어떤 이는 "이 거리엔 유니클로만 빼고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던데 직원들 안전은 염려하지도 않는거냐"고 비난했고, 또 다른 이는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옷상자들을 헤집고서야 겨우 비상구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안전불감증을 꼬집었다. 이 와중에 어린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유모차를 끌면서 사진을 찍던 한 여성은 네티즌들로부터 "정신 나갔다"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차차 시간이 흘러 총격의 흔적도, 특별한 용의자도 감지되지 않자 "테러가 아닐 수도 있으니 모두 침착하자", "근거 없는 낭설을 유포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소동은 다행히 테러나 범죄 혐의는 없이, 올 들어 런던에서 4차례나 테러가 발생하다보니 그저 무언가에 놀란 시민들이 이를 총소리로 오인해 벌어진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현장의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정확히 알릴 수 있는 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한 유머는 걸러 들을 필요가 있지만 항상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어디서나 SNS을 통해 소통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 어떤 뉴스 속보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마침 '디지털 미디어 전략경영'을 주제로 한 이번 연수의 첫 번째 시간에 30년 기자 경력의 외국인 강사는 "이제는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역할이 단순히 사건 보도나 현장 스케치에 그치는 건 아니지만 가장 기본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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