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전 세계 여러 역사적 인물들 중에 가장 많은 정파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이용당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잔다르크(Jeanne d'Arc)'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잔다르크 동상은 오늘날에는 프랑스 극우정치인들이 외국인들을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극우의 상징처럼 쓰고 있다. 정작 살아생전에 정파는 만들지도 못하고 정치적 희생양으로 산화한 역사적 인물을 수도없이 많은 정파들이 간판으로 끌어다쓰는 아이러니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 위치한 잔다르크 동상은 극우 정치인인 마리 르펜(Marine Le Pen) 의원이 자주 연설을 했던 곳이다. 프랑스에서 잔다르크는 2차대전 이후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로 쓰여왔다. 아이러니하게 그녀는 그보다 앞선 시대에는 하층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좌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더구나 마녀라며 화형당한 인물이었지만 시성되어 성녀가 됐고, 카톨릭 교회의 주요 교재에도 등장했다.
이후 그녀를 정치적 슬로건으로 제대로 이용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원래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프랑스 혁명정부에 의해 잔다르크는 왕실과 교회를 수호하는 하녀로 위상이 격하됐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심지어 그녀와 관련된 기념행사를 전부 폐지했었다. 그러나 영국과의 장기전쟁 상황에 놓였던 나폴레옹은 이 잔다르크를 도로 '구국의 소녀'로 끌어올렸다.
역시 프랑스의 영웅이 된 나폴레옹이 끌어올린 '구국의 소녀'는 곧 온갖 정치단체들에 의해 이용되기 시작했다. 좌파는 그녀가 하층민 출신임에도 나라를 구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우파는 그녀가 왕권 회복을 위해 싸웠음을 내세웠다. 1910년, 프랑스의 강력한 지원 속에서 교황 비오10세에 의해 시복이 된 후, 1920년에 시성이 되면서부터는 교회도 그녀의 이미지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그녀가 일평생을 바쳐 싸운 바다건너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잔다르크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그들의 수호성녀로 잔다르크를 내세우고 잔다르크로 분장해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전 근대시기이자 아예 여성인권과 관련한 초기적 개념조차 전무했던 15세기 인물이었지만, 필요에 의해 여성 참정권 운동의 마스코트로까지 이용됐었던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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