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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강화의 사랑/손택수

최종수정 2017.10.13 09:03 기사입력 2017.10.13 09:03

 
 신촌에서 강화 가는 버스 타고 청혼을 한 게 십여 년 전이다
 상금 없는 문학상 기념 조각을 팔아 장만한
 가락지를 끼워 준 곳,
 김포 가까운 데 둥지 틀고 틈만 나면 찾아갔다
 강화는 본디 섬이라서, 연육교 다리만 끊으면 언제든지
 섬이 될 수 있는 곳이라서
 그 어디에 소라고둥 같은 집을 짓고 살자 했는데
 그사이 강화는 조금씩 번성하여 번듯한 도시를 닮아 갔다
 늘어난 펜션과 마트와 요란한 카페들,
 하긴 이 땅에 온 이후로 하루도 공사 중 아닌 날 없었지
 변두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저마다에게 경쟁적으로 흙먼지를 뿌렸지
 변두리였을 때도 강화는 변두리가 아니었는데
 갯벌 위로 지는 노을 하나 만으로도 내겐 우주의 중심이었는데
 살림이 불고 적금도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점점
 더 쓸쓸해져 가는 우리네 사랑을 닮아 간다
 차도 집도 없던 그 시절 마트에 함께 장 보러 다닐 때가 가장 좋았다고
 장바구니 나눠 들고 걸어오던 밤길이 소풍이었다고
 그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여전히 보물 일 호라면서도
 아파트 평수와 연금과 보험료를 계산하다 시무룩해지는 섬
 우리네 사랑은 갈수록 변두리가 되어 간다
 변두리였을 때도 사랑은 변두리가 아니었는데
 어느새 머리에 뿌옇게 돋은 흙먼지를 서로 측은해하면서

 

■어디 강화뿐이랴. 우리가 살았던 곳은 대부분 변두리라서 밤길은 어두웠고 낮엔 흙먼지만 자욱했더랬지. 그래도 그곳엔 당신이 있어 "갯벌 위로 지는 노을 하나 만으로도 내겐 우주의 중심이었는데".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우리네 사랑은" 왜 "갈수록 변두리가 되어" 가는지. 아무리 "아파트 평수와 연금과 보험료를 계산하다 시무룩해"진다 해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또한 나를 보면 문득 등을 토닥이곤 하는데. 모를 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싶다가도 "어느새 머리에 뿌옇게 돋은 흙먼지를 서로 측은해하면서" 서로 꼬옥 안고 잠드는 우리. 어쩌면 우리 있는 곳이 자꾸 변두리라서 그만큼씩 넓어지는 게 사랑인지도 모를 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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