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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盧탄핵 때도 청와대는 돌아갔다, 이 언니들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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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시절 靑 여성비서관들의 고군분투기

[기하영의 야간비행]盧탄핵 때도 청와대는 돌아갔다, 이 언니들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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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온 나라가 조기대선 열풍에 휩싸였다. 헌법 규정상 대통령 파면일로부터 60일 이내에 후임을 뽑아야하는 탓에 대선시계도 숨 가쁘게 돌아갔다. 공석인 대통령직을 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연일 벌어졌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일한 여성 비서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대통령 없이 일하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없는'시기를 반영한 듯한 제목에 우선 눈길이 간다. 책장을 찬찬히 넘기다보면 청와대를 '권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하려 했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시의원, 시인, 학자 등 각자 분야도 다르고 걸어온 길도 다르다. 다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비주류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당당히 자기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머리말에 밝혔다. 이들은 "대통령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꿈꿨지만 대통령 없이는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려웠다"며 "우리들의 꿈은 대통령의 미래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0일간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보면서 청와대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증인으로 출석한 청와대 행정관들은 "공무상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며 진실을 밝히길 거부했고, 그 와중에 언론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청와대는 권력과 비리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점에서 '일터'로서 청와대의 모습을 조명한 이 책은 일정부분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청와대 안에서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를 위해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소통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가 권력과 비리의 온상만은 아니었음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참여 정부 시기의 청와대는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대통령님 월권하지 마세요"라며 대통령과 계급장을 떼고 맞장을 뜬 비서관도 있었고, 한미FTA 등에 대해 대다수의 비서관들이 반대를 해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며 설득하려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비서관들이 밝히는 청와대는 과중한 업무 탓에 웬만한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원형탈모, 대상포진, 치아 임플란트 서너 개쯤은 기본으로 감수해야 하는 직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달픈 격무 속에서 대통령이 간직한 꿈이 현실이 되도록 보좌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정책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인사, 국정홍보, 업무 혁신, 해외언론, 차별 시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서관으로 일한 저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업무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들의 고군분투기를 따라가다 보면 책 곳곳에서 그동안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일이 너무 많아 머리가 쥐가 난다는 비서관에게 화를 내는 노 대통령의 모습도 있고, 슬리퍼를 신고 불쑥 비서관들이 일 하는 곳을 방문하는 모습도 있다. 저자 모두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이들이기에 책 전반에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녹아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안에서 '비주류'로서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 이들의 분투기는 울림이 있다. 다음의 고백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압축한다.

"죽을 것처럼,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갔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니 사람이 바뀌고 또 제도와 시스템도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제도나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먼저인 것을. 누가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시스템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고. 그 반대는 아닌 것을.(237쪽)"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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