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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47] Ride - Carnival of Light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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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축제에 드리워진 해체의 그림자

라이드는 매우 근사한 슈게이징 밴드였다. 이전의 두 앨범에 드러나는 우울한 분위기, 트윈 기타의 불협화음과 노이즈, 그 틈으로 들릴 듯 말 듯 작게 노래하는 보컬, 박진감 넘치는 리듬파트로 구축된 사운드는 라이드를 특징짓는 요소들이었다. 세 번째 앨범에서 이들은 마치 디스코로 방향을 튼 비지스처럼 정반대의 음악을 시도했다. 슈게이징으로 쌓은 명성이나 평론의 호평과는 별개로 확실한 상업적 성공을 원했던 것 같다. 1994년은 브릿팝과 얼터너티브의 전성시대였고 라이드는 그 흐름을 따랐다.

‘빛의 축제’라는 제목처럼 앨범의 수록곡들은 전에 비해 얌전하며 무척 밝다. 밴드의 주력 작곡자인 앤디 벨(Andy Bell)과 마크 가드너(Mark Gardener)의 멜로디 감각은 여전히 뛰어나며 콜버트(Loz Colbert)가 보탠 한 곡(‘Natural Grace’)도 뒤지지 않는다. 거물 프로듀서 존 레키(John Leckie)가 다듬어낸 이들의 사운드는 브릿팝의 대표주자들에 견줄만하다. 특히 ‘매지컬 스프링(Magical spring)’이나 1960년대 영국 밴드 크리에이션(The Creation)을 커버한 ‘하우 도즈 잇 필(How does it feel)’은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곡 ‘아이 돈 노우 웨어 잇 컴즈 프롬(I don’t know where it comes from)’의 경쾌한 코러스가 끝날 때까지 우울함은 찾기 어렵다. 그래도 앨범은 조금씩 밴드 내 균열의 흔적을 드러낸다. ‘빛의 축제’ 속에는 해체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앨범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는 기미가 보인다. 벨과 가드너의 비중은 늘 비슷했지만, 이 앨범부터 벨이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면서 가드너는 역할이 크게 줄었고 앨범에 네 곡을 싣는데 그쳤다.

벨의 역량이 가드너를 압도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묵직한 리프로 앨범의 여는 ‘문라이트 메디신(Moonlight Medicine)’과 청량한 기타 사운드로 흥을 돋우는 ‘1000 마일즈(1000 Miles)’는 가드너의 여전한 솜씨를 뽐낸다. 하지만 가드너가 만든 곡은 싱글로 발매되지 못했다. LP에 가드너의 곡이 A면, 벨의 곡이 B면에 수록된 것 역시 이 둘이 서로의 곡을 나란히 놓길 원치 않아서다. 주도권의 불균형이나 균열은 갈수록 심해져 나중엔 멤버들마저 이 앨범을 싫어하게 되었다. 후속 앨범은 아예 벨의 장악 속에 만들어졌고, 이는 가드너의 탈퇴와 밴드의 해체로 이어진다.

메가 히트라도 기록했다면 이 정도 균열 따윈 덮어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밴드의 세련된 신보는 차트에서 선전했지만 이전 음악과는 너무 달랐고 라이드의 열성팬들은 이를 변절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일부 지지자들의 이탈을 만회할 만큼 히트를 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의 영국 차트엔 전성기를 구가한 브릿팝 밴드가 많았다. 앨범이 밴드에 대한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졌거나 혹은 일 년만 일찍 나왔어도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 자체로는 분명 준수하다. 특히 기존 브릿팝의 명반들에게서 갈증을 느낀다면 이 앨범은 훌륭한 대체재다.
서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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