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 바람기 때문에 유명해진 보르도 와인
알리에노르는 지금의 리무쟁부터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남서부 지방을 가지고 있었으나, 왕이 별로 맘에 안 드는지라 자신의 영토를 왕실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했고, 맘에 안 드는 루이 7세와 결혼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루이 7세는 수도사가 되려다가 형이 죽은 다음에 세자가 돼 다소 수도승 같은 면이 있었다. "영국 왕에게는 없는 것이 없다더라. 금은, 보석, 견포 무엇이든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한다. 내가 프랑스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빵과 와인 그리고 걱정 없는 유족한 생활뿐이다." 그러나 왕비는 결혼생활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다녔다. "나는 국왕이 아니라 신부하고 결혼했다"라고 떠들었으며 숙부와 스캔들, 노예와 스캔들 등 행동에도 거침이 없었다.
1152년 이들은 이혼(당시는 이혼이 아니고 결혼 무효)을 했다. 알리에노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달 후에 12살 연하인 헨리 플랜테저넷과 결혼했고, 2년 후인 1154년 헨리는 영국의 왕(헨리 2세)이 됐다. 알리에노르는 두 나라의 왕비를 해본 여자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된다. 헨리 2세는 덕분에 잉글랜드는 물론 어머니의 땅인 노르망디, 브르타뉴(1158년 합병)와 아버지의 땅 앙주에다 알리에노르 소유령인 아키텐까지 프랑스 왕국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프랑스는 여기 저기 와인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보르도라고 해야 괜찮은 와인이 나오는 곳으로 알고 있는 정도였지만, 영국은 보르도라는 최고의 와인생산 지역을 확보하고, 장사꾼 솜씨를 발휘해 유럽전역에 수출하면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보르도는 와인의 명산지로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영국 덕분에 와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보르도 사람들은 프랑스보다는 영국에 가까워졌고, 급기야 백년전쟁 때 창을 거꾸로 들고 영국 편을 들게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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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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