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꽃이란 그 생애의 모든 국면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상념을 동시에 안겨준다. 가지에 물이 올라 기어코 싹을 틔울 때 우리는 생명의 힘과 인내를 실감한다. 꽃이 피어 여린 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이내 만개하여 지천에 봄을 외치니 마침내 기운생동(氣韻生動). 그러나 절정은 그 마지막에 있으매 낙화(落花), 곧 작별의 의식이다. 마당 한편 고고한 목련이 생채기 하나 없는 순결한 몸을 대지 위에 던질 때이거나 벚꽃 소나기 아래에 섰을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 저 뒤에서 밀려드는 비애를 감지한다. 그래서 뭇 시인이 그 장렬함을 노래했거니와 나는 우리말로 시를 지은 무리 중에 으뜸을 다투기로 이형기와 지훈 조동탁을 꼽아 마땅하리라 본다. 두 시인이 모두 시제를 '낙화'라 하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지훈은 내면의 창을 슬쩍 열어 뜨락에 물든 계절의 징후를 진찰한다. 그의 내면은 공명하거니와 은은한 빛은 미닫이를 넘어 마음 속 깊은 자리를 물들이지 않는가. 은둔한 선비의 올곧음, 그 굳센 단절이 잠시 서글프다. 이형기는 결별을 감내하고 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래 오래. 그는 멀어져 한 뼘, 한 점 크기로 지워져간다. 이윽고 나는 걸음을 돌이켜 제 길을 걷는다. 등은 작별의 언어다. 마지막 한 모금 사랑을 머금었다가 왈칵 눈물 한 방울, 흐느낌 한 호흡으로 삶의 절정을 환기한다. 아직 서울에 꽃소식이 없으나 서둘러 낙화를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등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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