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청와대 기록물 이관 절차 강행 속 비밀 지정권자 논란 거세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청와대 기록물의 비밀(비공개ㆍ보호 기간) 지정권을 누가 갖고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몫이라며 이번 주부터 기록물 현황 파악ㆍ분류 등 이관을 강행하고 있지만, 기록물 전문가ㆍ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기록물의 비밀 여부 지정권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측은 '대통령기록물법' 제1조 1항과 제17조 1항을 근거로 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궐위된 박 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 지정권을 갖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 제2조1항을 보면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관련 기록물ㆍ물품로 정의해 놓고 있다. 제17조1항은 대통령이 기록물 보호기간(15~30년)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한다.
두 조항만 놓고 보면 황 권한대행이 비밀 지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에 대해 이재준 대통령기록관장은 "법률상 권한대행도 대통령기록물 지정권자에 분명히 포함돼 있으므로 황 권한대행에게 권한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기록물법의 취지ㆍ목적상 해당 기록물을 생산한 당사자인 대통령만 비밀 지정권을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기록물 제17조를 보면 ▲국가 안보 및 경제 위해 초래가 우려되거나 ▲인사에 관한 기록물 ▲개인 사생활 ▲기관과 기관간 의사소통기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 등만을 비밀로 분류해 15~30년간 보호하도록 해놨다. 상식적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개인 사생활이나 정치적 견해ㆍ입장 표명 기록물 등에 대해 비밀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행자부의 주장대로 대통령과 권한대행ㆍ당선인 등에게 모두 비밀지정권이 있다고 한다면 임기말 현직 대통령ㆍ당선인이 동시에 존재할 때 누구에게 지정권이 있는 지 결정할 수 없는 '모순'도 발생한다.
결국 이런 입법 취지와 상식ㆍ모순 등을 종합해 볼 때 대통령 본인이 아닌 다른 그 누구도 비밀 지정 권한을 대행할 수 없다는 얘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또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정할 수 있다'고만 해놨다. 즉 임의 조항일 뿐 강제ㆍ의무 조항이 아니다. 따라서 황 권한대행이 비밀 기록을 지정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이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관계자는 "청와대나 황 권한대행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공범들로 볼 수 있는 데, 그 증거물들이 고스란히 공범들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며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직무정지 이전에 대통령이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을 완료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인정될 수 있으며, 그 시점 이후에 대통령은 물론 그 누구도 지정행위를 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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