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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당신은 밥 딜런을 모른다

최종수정 2017.01.11 04:07 기사입력 2017.01.10 14:31

포크음악의 대부? 인권·반전의 상징? 몇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인물

197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어)

[아시아경제 임훈구 종합편집부장] 포크음악의 대부, 인권과 반전의 상징, 대중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이쯤 되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란한 수사는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포크와 록에는 훌륭한 음악가들이 차고 넘치며, 음악으로 사회에 저항한 뮤지션들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포크와 록을 결합해서 위대하다고? 물론 맞는 말이지만 기존의 장르를 뒤섞어 새로운 장르를 만든 사례는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밥 딜런. 그를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그를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초기 음악을 포크로 정의 내렸을 때 딜런은 록을 끌어들여 변신했다. 이후에는 컨트리 음악과 복음성가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저항의 음유시인으로 정의하면 그는 태연하게 사랑타령을 부른다.

이렇게 그를 일정한 카테고리 안에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딜런 자신도 그 어떤 무엇인가에 규정되는 것을, 그래서 그 무엇인가에 속박 당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모든 찬사에도 늘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불친절하게 노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음악인을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록음악 평론가 제임스 오도넬은 “가사가 난해하여 의미를 정확히 꿰뚫기 어렵지만 딜런의 가사만큼 신의 칼날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관통하는 예는 일찍이 없었다”고 말했다.

딜런은 음악으로 시를 쓴다. 그는 풍부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잘 짜여진 내러티브라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음악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를 실험했다. 저항과 서정 사이를 무심하게 오가는 그의 스타일은 탈주하듯 팬들의 예상을 깨뜨렸다. (토드 헤인스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는 매우 현명한 제목이다.)

후배 뮤지션들은 경쟁하듯 자신은 딜런의 후예라며 기꺼이 존경을 바친다. 비틀스도 딜런을 만나기 전까지는 재능이 풍부한 아이돌에 가까웠다. 비틀스는 딜런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놀라운 음악적 성숙을 경험했다.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또는 새로 구축하는) 그의 노랫말은 이렇게 대중음악의 수준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언어를 음악의 중심에 놓고 음악의 정신의 문제에 다가간 첫 번째 사례이며 이로 인해 20세기 대중음악은 정신적 혁명을 맞이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노래 중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부터 살펴보자.

옛날 옛날에 넌 정말 멋지게 차려입었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넌 부랑자들에게 10센트 동전을 던져줬어, 안 그래?
사람들은 너를 불러 말했지. “조심해 예쁜 아가씨, 그러다 큰 코 다쳐”
넌 그들 모두가 그저 농담하는 줄 알았지
넌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두를 비웃곤했지
이제 넌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않네
다음 끼니를 해결하려면 구걸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기분이?
완전히 무명인처럼
구르는 돌처럼
(후략)

이 노래에서 딜런은 한때 대저택에서 살던 신분에서 부랑자로 전락한 여성에게 노숙자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부랑자가 되기 전의 상황을 언급하며 지금은 당신이 멸시하던 바로 그 상황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노래의 주된 정서는 신랄한 조롱이다.(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면 정말 곤란하다) 이 가사를 시로 읽을 때보다 노래로 들으면 조롱과 경멸을 넘어 저주로 까지 들린다.

밥 딜런이 2010년 2월 백악관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 기념식 공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어)

딜런의 음악이 처음부터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것은 아니다. 데뷔 앨범에서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작곡한 곡은 2곡 밖에 되지 않는다. 음악적 스승 우디 거스리에게 헌정하는 곡을 통해 자신의 뿌리가 포크라는 사실을 알렸을 뿐 잠재력 있는 음악가의 데뷔작 정도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2집‘자유로운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대중음악의 정점에 올라섰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선언서와도 같은 이 앨범에는‘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 '전쟁의 귀재들'(Masters of War) '세찬 비가 쏟아질 거예요'(A Hard Rain's A-Gonna Fall) '두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등 명곡이 가득하다.

‘전쟁의 명수들’(Masters of War)은 평화를 파괴하는 존재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출된 곡이다. 한때 연인이었으며 딜런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를 존 바에즈는 가사가 너무 끔찍하다며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오라, 너희 전쟁의 귀재들이여
모든 총을 만든 너희들
모든 죽음의 비행기를 만든 너희들
모든 커다란 폭탄을 만든 너희들
벽 뒤에 숨은 너희들
(중략)
너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
파괴의 도구를 만드는 일 말고는
마치 너희의 작은 장난감인양 내 손에 총을 쥐여줘
(중략)
젊은이들의 피가 그들 몸밖으로 흘러나와 진흙 속으로 파묻힐 때
너희는 물러서서 구경하지
사망자 수가 치솟을 때
너희는 대저택 안에 숨어 있지
(중략)
나는 너희가 죽기를 바라지
너희 관을 따라갈거야
그 창백한 오후에
너희를 지켜볼거야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설 거야
너희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이 노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차지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괴물처럼 변해가는 배후에 군산복합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파괴는 정당화 되고 정치적 지배와 거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딜런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단 두 곡만으로 딜런의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음악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이자 나오는 문은 음악으로 쓴 현대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사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딜런의 노래를 음악으로만 듣던 국내 팬들에게 이 책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은 큰 선물이다.

데뷔 앨범 ‘밥 딜런’(Bob Dylan)(1962)부터 ‘폭풍우’(Tempest)(2012)까지 31개 정규 앨범 288곡과 부틀렉 등 비정규 앨범 99곡을 포함해 모두 387곡의 노랫말을 꼼꼼하게 번역해 원문과 함께 실었다. 가사집이자 시집인 이 책은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영혼의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서대경·황유원의 리듬감 넘치는 번역은 큰 선물이다. 이들의 직업은 시인이다.)

외국어에 어지간히 능통하지 않고는 영미권의 음악을 듣고 그 뜻을 알아듣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딜런처럼 난해한 가사를 웅얼거리는 듯 음의 고저 없이 불친절하게 노래하면 알아듣기 더욱 힘들어 진다. 그러나 가사를 모르며 딜런의 음악을 듣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로와도 같은 딜런의 음악에서 길을 잃을 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출판사 = 문학동네)



임훈구 종합편집부장 stoo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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