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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음악은 문학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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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31일 오후 8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밥 딜런이 모습을 드러냈다. 통기타와 하모니카만 들고 1962년 데뷔한 지 48년 만이며, 70세를 한 해 앞둔 나이에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오는 날의 여인들 #12와 35(Rainy Day Women #12 & 35)'을 시작으로 '누워요, 여인이여, 누워요(Lay, Lady, Lay)' '오늘밤 그대의 연인이 될게요(I'll Be Your Babe Tonight)'가 이어졌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곡들이 계속 연주되자 관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 더(One More Cup of Coffee)' '(대답은)바람 속에 날고 있지(Blowin' in the Wind)'처럼 국내에 잘 알려진 곡이 아닐 뿐더러 그나마도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가 원곡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즉흥 세션처럼 연주했기 때문이다.

 딜런은 첫 번째 앙코르 곡으로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대답은)바람 속에 날고 있지'를 들려주었지만 이 곡들 역시 연주가 시작되고 그 유명한 도입부의 가사(사람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 불리게 되는 걸까/그래, 흰 비둘기가 모래에 앉아 잠들려면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가야 할까)가 시작되어서야 비로소 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공연할 때마다 곡을 다르게 혹은 멋대로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날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들은 그의 라이브 연주와 갈라지는 듯한 특유의 음색이 아니라 그의 태도였다. 딜런은 흥에 겨워 몸을 흔들지도 않고 관객의 동참을 유도하는 손짓도 전혀 하지 않았다. 공연을 시작하는 인사도 없었으며 '컴 온' '아이 러브 유' 같은 추임새도 없이 두 시간의 공연을 마치고 '생큐' 한마디만을 남기고 떠났다. 이런 무심한 사람….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밥 딜런으로 결정되었다. 수상자가 결정되던 날에도 딜런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투어를 하고 있었다. '네버 엔딩 투어'라 불리는 그의 공연은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의 라스베이거스 공연장 주변에는 수상을 축하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관객은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겠지만 딜런은 6년 전 내한공연 때 그랬던 것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생큐' 한마디만을 남기고 공연을 끝냈다고 한다. 이 시크함이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문학에 대한 몰이해이자 테러"라는 말까지 나온다. 게다가 당사자인 딜런의 태도로 인해 소란은 더 커지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딜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그가 수상식장에 나타날 것인지, 수상을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밥 딜런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11월23일까지 21회의 공연 계획이 잡혀있고 12월 스케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시상식장에는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노벨문학상은 과거에 철학자와 역사가, 정치가에게 상을 수여했다. 작년에는 르포작가가 받았다. 모두 문학의 이웃들이다. 밥 딜런은 노래 가사로 시를 흉내 내거나 기존의 시에 멜로디를 입혀 작곡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쓰고 노래한다. 딜런이 작곡을 먼저 하는지 시를 먼저 쓰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 문학과 음악의 경계는 무의미해 보인다. 그는 말 그대로 음유시인이다.

 음악은 문학의 오랜 친구이다. 선배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문학은 오랜 기간 음악을 비롯한 다른 장르의 예술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음은 물론이다. 노벨문학상이 오랜 친구인 음악에 상을 주었기로서니 뭘 그리 호들갑인가. 촌스럽게.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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