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재차 사과 "회한이 사로잡고 있는 나날"

박범신 소설가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성추문에 휩싸인 박범신(70) 작가와 박진성(38) 시인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작가는 23일 트위터에 "내 일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하고 싶어요. 인생, 사람에 대한 지난 과오가 얼마나 많았을까, 아픈 회한이 날 사로잡고 있는 나날이에요. 더 이상의 논란으로 또 다른 분이 상처받는 일 없길 바래요. 내 가족, 날 사랑해준 독자들께도 사과드려요"라고 적었다. 사과 표명은 두 번째다. 그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21일에도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 죄일지라도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라고 썼다. 그러나 잇단 비판에 트윗을 삭제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박 작가는 전직 출판 편집자라고 밝힌 A씨의 트위터 글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A씨는 박범신 작가가 출판사 편집자, 방송작가 등을 추행 및 희롱했다고 적었다. 수필집을 편집할 당시 가진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고 했다. 편집팀원과 방송작가, 팬 등 일곱 명이다. 박 작가로부터 '늙은 은교', '젊은 은교' 등으로 불렸다고 A씨는 주장했다. 성적 농담을 했다고도 했다. 영화 '은교'를 제작할 당시 주연배우 김고은씨와의 술자리에서 극중 은교의 캐릭터를 설명하며 "섹스경험이 있나?"라고 물었다는 등의 여담이다. 자신과 함께 일한 여성 편집자 전부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식의 얘기도 꺼냈다고 밝혔다.

A씨는 "남자 작가 한 명이 세 시간 남짓 동안 여성 일곱 명을 성희롱했으며, 그 중 한 명은 바로 옆에서 내내 어깨, 허리, 허벅지 손을 터치당했다"고 했다. "너무 유명한 작가이고,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말았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로 언급된 방송작가의 동료라는 B씨는 페이스북에 "글에 오르내리고 있는 당사자는 성희롱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방송작가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성적 수치심을 견뎠다는 뉘앙스의 글은 방송작가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했다. 여성팬으로 언급된 C씨도 페이스북에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손을 잡고 얼싸안았다. 오랜 팬과의 관계에서는 충분히 나눌 수 있는 행동"이라면서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일까지 본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기정사실인 양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잇단 성희롱 의혹에 침묵하던 박진성 시인은 22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게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부적절한 언행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올해 예정되어 있던 산문집과 내후년에 출간 계획으로 작업하고 있는 시집 모두를 철회하겠습니다. 저의 모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닫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처음 성희롱을 지적한 D씨에 따르면 박 시인은 지난해 미성년자였던 D씨에게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했다. 사진을 통해 D씨의 학교를 알아내고 "교문 앞에 서서 기다리겠다"고 하는가하면 "거리를 걸으면서 손을 잡자"고 했다. D씨는 박 시인이 이 글을 보고 연락해 공포를 느꼈다며 이름을 밝혔다. 실명이 공개되자 SNS에는 박 시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 연이어 올라왔다. 주로 시를 습작하거나 박 시인의 시에 관심이 많은 이들로, 박 시인이 사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고 했다. 특히 박 시인의 자살하겠다는 연락에 새벽 기차를 타고 그를 만났다는 E씨는 "술을 마시고 있던 박 시인이 '너는 색기가 도는 얼굴'이라고 말했고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했다. 그는 "이후 박 시인과 노래방에 가서 자의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했다"고 했다. 이에 지난해 그의 시집 '식물의 밤'을 낸 문학과지성사는 "피해자 분들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며 참담한 마음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