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물고기를 키울까.
그러면 물고기의 내일이 사라지겠지.
가득 차 있는
빈 의자 사이에 빽빽하게 비어 있다.
집에 돌아와
불을 켜자 형광등이 나가 버린다.
나가 버린 형광등을 들고서 집을 나간다.
형광등과 똑같은 형광등을
데리고 돌아온다.
어제도 들었던 노래고
나는 똑같이
따라 부른다.
빈 의자에 빈 어항이 놓여 있다.
빈 어항에서
부드러운 배경음악이
밤새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바람이 밤새 지나간다.
똑같은 나뭇잎 모가지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물고기들이
입에서 흘러나와
바깥으로 날아간다.
난 이 시의 제목이 왜 "여섯 번째 트랙"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섯 번째'나 '여덟 번째'가 아니라 "여섯 번째 트랙"이라고 적는 게 적확하다는 확신이 든다. 어떤 가늠하기 어려운 망막하고 고된 쓸쓸함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 시를 읽고 문득 입가에 맴돈 건 씨스타가 부른 '나 혼자'였다. "나 혼자 길을 걷고 나 혼자 TV를 보고 나 혼자 취해 보고 이렇게 매일 울고불고…." 물론 이 시를 쓴 시인은 "울고불고"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뒤틀지도 않는다. 다만 담담하다. 오히려 담담해서 오로지 담담하기만 해서 그 담담함 속에서 참 큰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일이 사라"진 "빈 어항"만큼, 저녁 버스 속에 "가득 차 있는" "빽빽하게" "빈 의자"들만큼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관중도 동료 선수도 아무도 없는 빈 트랙을 그저 "여섯 번째 트랙"과 함께 수십 번 수백 번 "어제도" 그랬듯 돌고 다시 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생각마저 든다. 무참하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