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에어컨 전문기업 갑을오토텍
사측, 제2노조 설립 개입으로 갈등 증폭
노조 "노조파괴 공작 중단" 공장 점거
10년 고용보장·채용거부권 등도 요구
갑을오토텍 사측 직원들이 지난 26일 충남 아산에 있는 공장 정문 앞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측 직원들에게 공장의 생산시설 일부라도 가동할 수 있게 해달라며 출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8일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며 공장이 멈춘 지 벌써 50일이 지났다. 그동안 회사의 매출 피해는 4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 대부분은 매출이 70~80%나 감소했다. 180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회사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경총의 공권력 투입 요청은 매우 이례적이다. 노조와 회사 측의 극심한 대립으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갑을오토텍 사태를 두고 '제2의 쌍용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저지로 생산 재개는 무산됐다.
가동 중단이 한 달을 넘어서자 박당희 대표는 지난 10일 공장 일부라도 돌리게 해달라며 호소문을 발표했다. 직장폐쇄를 결정할 때 배치한 용역 경비원도 철수시켰다.
그러나 노조는 이 요구를 일축했고 현재 양측 간의 대치상황은 50일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지난해 복수노조 설립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다. 당시 52명으로 구성된 갑을오노텍기업노동조합(제2노조) 설립 과정에 회사 측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존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414명)와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법원은 지난달 갑을오토텍의 전 대표에 대해 법정구속 판결을 내렸다. 현재 제2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조는 "모든 것은 노조 파괴를 위한 경영진의 공작"이라면서 제2노조(기업노조) 관련자 전원 퇴사, 경비 외주화 추진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있다.
갑을오토텍 사측 직원들(왼쪽)이 지난 26일 충남 아산에 있는 공장 정문 앞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측 직원들에게 공장의 생산시설 일부라도 가동할 수 있게 해달라며 출입을 요구하고 있다.
원본보기 아이콘정민수 갑을오토텍 인사노무부문장(이사)은 "회사 측은 당시 경영진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다했다"고 밝혔다. 정 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측은 인사 등 경영권과 관련된 무리한 요구를 하며 공장 점거 등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6월 두 노조 간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자, 제2 노조 조합원 52명 전원에 대한 채용이 취소됐다.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판정, 복직명령이 내려졌다. 회사 측은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같은 해 12월 채용 취소자 52명을 복직시키고 계열사로 전출시켰다.
노조가 주장하는 임금 인상 요구도 수용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에도 52일간 파업한 노조는 올해 기본급 월 15만2050원 인상, 연간소득 3% 초과 의료비 전액 회사 부담, 노조의 신입사원 채용거부권, 10년간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갑을오토텍은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180여개 협력사까지 줄도산 위기…상생의 길은 = 지난 9일 갑을오토텍의 40개 협력업체 대표들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갑을오토텍의 오랜 조업 중단으로 인해 연쇄 도산이 우려될 정도로 경영이 어렵다"면서 "다음달부터는 임금지불도 힘들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갑을오토텍 협력사 애드테크의 박기용 대표는 "만약 금융권에서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수십 개 협력사가 한꺼번에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갑을오토텍 경영진이 제2노조 설립에 개입하는 등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협력사들이 이미 다 도산해버린 상태라면 정상화도 의미가 없다"고 호소했다.
갑을오토텍의 협력업체는 180여곳, 직원들은 1만9000명에 이른다. 이미 많게는 70~80% 매출이 줄어든 곳도 있다.
기체펌프 제조업체 제이엠텍의 김준오 대표는 "매출의 70%가 갑을오토텍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데 7월 매출이 200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8월 매출은 0원이 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갑을오토텍의 경우 현재까지 생산차질에 따른 누적 피해규모는 4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다임러, 미쓰비시후소 등 해외 주요 고객사들은 지속된 파업으로 이미 거래 중단 및 수십억원 규모의 패널티까지 부과했다. 여기에 여신 한도 축소와 회수까지 진행돼 이자율도 대폭 증가하는 등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같은 상황에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조속히 공권력을 작동해 존폐 위기에 직면한 갑을오토텍 및 협력업체의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에서는 최악의 경우 청산도 고려중이다.
정 이사는 "사태가 장기화되면 결국 모두가 공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면서 "기업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제라도 노사 모두가 우리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노조 집행부를 제외한 여타 직원들에 대해서는 인사조치를 포함해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