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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생 '무등산 타잔'이 4명 죽인 살인자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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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철거반원 쇠망치로 살해한 '39년전 박흥숙 사건'을 아시나요

1977년 4월 20일 광주 증심사 계곡 덕산골. 이곳에 자리 잡은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기 위해 광주 동구청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철거 계고장은 이미 왔지만 도시에서 밀려나 산자락에 얼기설기 움막을 짓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던 빈민들에게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집이 없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를 받아줄 곳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절망 속에 주민들은 철거 집행을 맞닥뜨렸다. 이곳에 스물두 살 청년 박흥숙도 있었다. 철거는 가혹했다. 철거반원들은 가재도구를 꺼낼 시간도 주지 않고 불부터 질렀다. 폐자재를 엮어 만든 집을 다시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천장에 숨겨둔 전 재산이 불에 타고 거동도 못하는 이웃 노인들의 집도 재가 됐다. 박흥숙은 이성을 잃었고 어느 순간 철거반원을 죽인 살인자가 돼 있었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무등산 타잔' 박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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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전인 1977년 4월 20일 벌어진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을 재구성 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무당의 아들인 박흥숙이 철거반원을 사제총으로 위협해 양손을 묶고 쇠망치로 때려 4명을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당시 '무등산 타잔'이라고 불렸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몸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무등산을 날다시피 올랐다고 한다. 독학으로 무술을 연마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의 살인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지만 무당의 아들, 사제총, 쇠망치, 무술 고수 등의 말들은 '무등산 타잔'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게 하는 엽기적인 살인범으로 만들었고 왜 이런 참극이 빚어졌는지는 그 배경은 감췄다.
1977년 광주에서는 전국체전이 열릴 예정이었다. 소외된 이 지역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미뤄졌던 개발 사업에 박차가 가해졌고 무등산 일대의 경관개선사업도 그 중 하나였다. 훗날 철거반원의 진술에 따르면 전국체전 준비 점검을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헬기 순시가 무등산 일대를 지날 수 있어 경관을 해치는 무허가 주택을 일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70년대 개발독재와 도시 빈민의 무주택 문제, 생계 대책 없이 밀어붙인 폭력적인 강제철거 등이 맞물려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비극을 잉태한 셈이다.

박흥숙은 타잔이라고 불렸지만 그에게는 제인도 치타도 없었다. 오히려 산짐승을 쫓기 위해 열쇠수리공으로 일하며 익힌 철공 기술로 폭발음만 나는 총을 만들어야 했다. 철거반원을 위협하는 사제총의 실체다. 무당의 아들이라고 보도됐지만 그것은 당시 덕산골이 굿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무당골이라 불렸고 이들에게 박흥숙의 어머니가 수고비를 받고 밥을 해준 적이 있어 만들어진 말이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했지 싸움을 위해 무술을 연마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법관이 돼 자신 같은 약자를 돕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맨손으로 집을 지었던 사람이었다. 범행 후 도주 중에 만난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에 자수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불의한 시대가 그의 죄를 덮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최후 진술에서 "나의 죄는 백번 죽어도 사죄할 길이 없다. 나 같은 기형아가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어떤 극형을 주시더라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사형을 선고 받았고 광주교도소에서 3년 동안 수감되다 1980년 12월 24일 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의한 시대는 그를 단지 울분을 참지 못한 살인자로만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개발주의와 강제철거는 무등산 타잔 이후에도 곳곳에서 비극을 낳았고 30년도 더 지난 2009년 용산에서 참사를 빚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물었다.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이 나라의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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