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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X파일] 유병언 바로 그날, 구미 택시기사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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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스트레스 해소 살인사건…대법, 징역 17년 선고한 원심 확정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2014년 7월23일, 여론의 시선은 온통 ‘유병언 변사체’에 쏠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꼬리가 잡혔다’는 수사당국 설명과는 달리 유 전 회장은 이미 숨진 사람이었다.

7월22일 유 전 회장이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월23일 주요 언론은 숨진 유병언을 쫓겠다고 ‘황당한 추적’에 나섰던 수사당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게 ‘유병언 죽음’이 여론의 시선을 붙잡고 있을 때 경북 구미에서는 또 다른 의문의 죽음이 알려졌다. 7월23일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이른바 ‘구미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다. 당시는 그런 사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조용히(?) 넘어갔다.

[법조X파일] 유병언 바로 그날, 구미 택시기사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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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유병언 사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했다. 40대 후반의 평범한 택시기사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숨진 사건이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안타까운 대상이었다.

7월22일 오전 1시, 택시기사 A(49)씨는 아내에게 “곧 귀가한다”는 전화를 남겼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아내의 신고를 받고 추적에 나섰다. 택시 동선을 CCTV를 통해 확인했다. A씨는 구미시 낙동강변 대로의 가드레일 너머 풀숲에 버려져 있었다. 그는 그렇게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세상을 떠나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그는 가정을 지키고자 열심히 일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가장 중 한 명이다. 그는 왜 숨진 채 발견됐을까. 그리고 버려져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귀신보다 두려운 대상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모르는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지닌 이들에게 그러한 얘기는 섬뜩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B(29)씨는 그 무서운 사람 중 하나다. 원래 무서웠던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무서워진 사람이다. B씨는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하던 사람이다. 사업을 하면서 7000만원의 채무가 발생했다.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빚 독촉에 시달렸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누군가와 상의하지도 못했다.

B씨는 자신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엉뚱한 곳에 풀었다. 7월22일 오전 1시, 구미시 한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A씨를 만났다. A씨에게 행선지를 말한 뒤 택시에 탔다. B씨는 행선지에 도착했지만, 다시 장소를 이동해 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이날 새벽 2시께 구미시 한 대학 앞에서 “소변을 보겠다”면서 택시를 세워달라고 했다.

B씨는 이후 미리 준비했던 흉기를 꺼내 A씨의 목과 몸통 부위를 찔러 살해했다. B씨는 이후 A씨를 태우고 택시를 몰고 가다가 낙동강변 대로에 세우고 가드레일 너머 풀숲에 A씨를 버리고 달아났다.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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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숨을 거뒀고, 시신은 풀숲에 버려졌다.

B씨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B씨는 A씨 택시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까지 다다랐고, 멈춘 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마음을 고쳐먹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A씨를 1회 찌른 뒤 범행을 멈췄다면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B씨는 생전 처음 본 택시기사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B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B씨는 정신병 등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면서 항소했다.

법원은 그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영위했다”고 판단했다. B씨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고, 이러한 점이 고려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이인복)는 B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른바 구미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이제 감옥에서 오랜 기간, 반성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유병언 사건에 여론의 시선이 쏠린 사이 발생한 구미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그렇게 법적인 판단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던 A씨와 그 가족이 경험한 아픔이 치유됐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사건은 세상이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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