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뛰어난 리더십과 도덕적 삶을 보여줬다.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한 그는 저서 '명상록'을 통해 금욕과 절제의 삶을 주창했고 스스로 실천했다. 그는 명상록에서 "어머니에게서는 경건과 인덕(人德), 그리고 나쁜 행위뿐 아니라 나쁜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을 배웠으며, 부자들의 습성에서 멀리 떠나 소박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고 적고 있다. 이 구절만 잘라 놓고 본다면 누가 그리스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아닌 로마 황제의 말이라고 상상하겠는가.
롯데그룹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박진감(?) 넘치는 사극이 전개되고 있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전 세자(장남)는 판단능력이 흐려진 '상왕'을 모시고 차남의 본거지를 공격해 반대파를 일거에 제거한다. 그러나 바로 직후 차남은 휘하의 장수를 모아 단숨에 쿠데타를 진압하고 만다. 다시 상왕은 차남에 대한 도덕적 파문을 선언하지만 차남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며 무시한다. 흥미진진한 전개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대목이 많다. 장남의 쿠데타가 너무 안이하고 엉성하다는 것이다. 이사회와 이사회 의장의 법적 권한에 대한 검토와 치밀한 시나리오 검토, 도상훈련이 있었어야 하지 않는가. 상왕(신격호)만 앞세우면 만사 끝이라고 보았다면 장남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이미 실격이다.
사실 이와 같은 재벌가의 권력 투쟁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2000년 3월에 발생한 현대그룹 '왕자의 난',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인 금호그룹의 형제 간 대립과 갈등도 롯데그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왕자의 난의 원조는 조선 태종일 것이다. 그는 이복형제들을 일거에 살해했고 2차 왕자의 난에서는 함께 거사를 도모한 자신의 친형제 이방간조차 제거했다. 한 인간으로 본다면 패륜의 극치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태종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은 적어도 그는 왕권 강화를 통해 새로 건국한 조선의 기반을 다지고자 하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종이기에 장남도, 차남도 아닌 삼남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판 왕자의 난에는 이러한 대의명분이 없다. 롯데판 왕자의 난에도 그룹의 미래와 전략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없다. 다른 재벌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역시 장자 상속이라는 혈연승계의 원칙 아래 기계적으로 이뤄진 것이지 능력의 유무나 리더로서의 적합성에 대한 고민은 없다. 이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재벌그룹의 후계 작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너무도 뛰어난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범한 너무도 인간적인 실수, 자식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던 부성애는 결국 로마 제국의 파멸로 결말을 맺었다. 200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는 동일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아우렐리우스의 뼈아픈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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