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500여편 중 자율상영했는데 의무상영 영화 24편으로 축소
극장 자율성·관객 선택권 줄어, 선정 위탁업체 예산낭비 지적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국내에는 독립ㆍ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예술영화전용관이 서른아홉 곳 있다. 극장의 프로그래머들은 장르, 국가, 배우, 성별 등 다양한 콘셉트를 살려 스크린에 내걸 영화를 선택한다. 멀티플렉스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들을 장기간 걸어두어 관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예술영화인들이 지탱할 버팀목 노릇을 한다.
자유로이 영화를 상영하던 예술영화전용관들에 위기가 닥쳤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올해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방식을 바꿀 계획이다. 이 경우 영진위에서 선정한 스물네 편의 영화를 트는 극장에 지원이 집중된다. 극장의 자율성은 물론 관객의 다양한 영화선택권 보장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월 개편안의 내용과 차이가 없는 기본 틀에 영화인들은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악(改惡)으로 보는 핵심은 위탁단체를 통한 독립ㆍ예술영화 스물네 편의 선정 문제다.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은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에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고유성격과 지향성이 무시돼 프로그램 편성의 자유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문화 생태계에서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삼아온 영진위가 스스로 정책지향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영진위는 그동안 운영지원사업을 해오면서 다양성영화 지원 및 공정환경조성을 통한 영화문화 융성을 목표로 내세워왔다.
위탁업체로 예산이 낭비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진위는 독립ㆍ예술영화 유통에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위탁업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은 "해당 사업을 진행해온 진흥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라며 "사업 추진 중 지원 작품 및 극장 선정에 있어 특정영화나 극장을 배제하는 검열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과 독립영화배급사 및 각종 영화제 관계자들은 영진위에 영화를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압력이 가해지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해임 시도와 맞물려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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