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지켜본 과학계에 충격파가 전해졌다. 이날 정부는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로 '과학기술전략본부(이하 전략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18개 R&D 전문 기관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전략본부 설치안은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짜지 않았다. 나라 곳간을 틀어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그렸다.
기재부는 전략본부 설치에 대한 용역 연구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의 한 연구원에 맡겼다. 과학계 업무를 주관하는 미래부는 이번 전략본부 설치안에서 소외됐다. 과학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을 리 없다.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안정적 R&D에 안주한 연구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를 깔았다. 다만 그는 "독일 방식을 그대로 옮겨온다고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류를 범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 모델이 정착되기 위한 토양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의견은 시늉만 내고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고민도 깊어 보이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의 일방적 전략에 따라 추진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기획재정창조과학부가 탄생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석준 미래부 1차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과학계 업무를 총괄하는 곳은 미래부 1차관실이다. 이 차관은 기재부 차관에서 지난해 7월 미래부 차관으로 수평 이동했다. 과학계는 "기재부 출신 차관이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전략본부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1차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 모델을 두고도 국내 R&D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적보다는 내년 R&D 예산 삭감에 방점이 놓여있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재정건전성에 목을 매야 하는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다 보니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 타깃을 과학계로 삼았다는 비판이다. 이래저래 미래부로서는 곤혹스럽다.
한 과학계 인사는 "미래창조과학부 만드는데 시간을 질질 끌더니 이젠 전략본부까지 만드느냐"며 "창조적(?) 조직 만들다 시간 다 보내고 일은 언제 할 건 지…"라며 혀를 찼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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