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은 가늘고 강인하며 줄은 느슨하지만 저력이 있다. 끈은 비교적 짧고 줄은 상대적으로 길다. 태어날 때 달고 있는 건 탯줄이며 태어나서도 물고 있는 것은 젖줄이다. 죽을 때 끊어지는 건 목숨끈이며 붙어있는 건 명줄이다. 목숨을 끊으려고 목에 감는 건 자살끈이며 깊은 수렁에서 올라오도록 내려주는 건 생명줄이다. 콩쥐와 팥쥐가 잡은 건 줄이며, 취업을 해볼까 하고 대는 것도 줄이다. 무엇인가 순서를 기다리며 하기 위해 서 있는 것도 줄이며 흩어질 듯 어수선한 것도 줄이다. 이때의 줄은 사물이 단단하게 이어진 건 아니지만 서있는 사람들의 앞뒤가 서로 붙으려고 하는 마음을 먹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귀성 열차표를 사기 위해 서있던 줄에서 사람들은 그 순서 때문에 싸움도 벌인다.
끈끈하다는 말은 끈들이 이어지면서 서로 끊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은근한 무엇이 더 붙어있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끈끈한 사회는 일견 견고해 보이지만 거기엔 패당의 횡포와 끼리의 결탁이 숨어 있다. 끈끈한 사회는 낯선 신입자나 소수의 무력한 이들이게는 배타적이고 가혹하기 쉽다. 사탕이 여러 개 붙은 것은 줄줄이 사탕이고, 이러저리 엮인 집단 범죄가 탄로나서 앞뒤로 줄을 이루며 수갑을 찬 채 붙잡혀 들어오는 것은 줄줄이 체포이다. 줄줄이에는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줄 속에서 이해하려는 생각이 들어있다. 따라서 줄줄이라는 말을 쓸 때, 개체의 인격과 개체의 고민과 개체의 다름이 빠져나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끈기가 있다는 말은 마음의 끈이 끊어지지 않는 기운을 지녔다는 칭찬이다. 끈질기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풀이 잘 붙는 것도 끈기라고 한다. 끈적거림이나 끈덕짐, 끈끈이풀은 끈이 떨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으려고 달라붙는 성질을 표현하고 있다. 질끈 동여맨다 할 때의 ‘질끈’에는 끈을 감을 때 팽팽해지면서 내부를 압박하는 느낌이 담긴다. 끈이 감긴 것을 죄면 죌수록 끈은 스스로 지닌 강인한 골성을 드러낸다. ‘질끈’이라고 할 때의 그 결의에 찬 힘을 생각해보라.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끈이다. 한편 줄기차다라는 말은 줄의 힘을 말한다. 물은 줄기차게 흐른다. 물과 물 사이엔 손가락을 집어넣어도 쑥 들어가고 큰 칼을 집어넣어도 쑥 들어가지만, 그것을 잘라내거나 베어낼 순 없다. 물이 줄을 설 때 그 결합은 고체처럼 단단하지 않지만 고체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물줄기이다. 무엇인가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을 줄기차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줄기찬 것과 끈기있는 것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줄기찬 것은 계속 이어가려는 전향적인 힘이며, 끈기있는 것은 끊어지지 않으려는 밑바닥의 힘이다. 끈기있는 것은 죽지 않으려는 힘이며, 줄기찬 것은 살아가려는 힘이다. 모든 나무의 줄기는 바로 그 생명의 줄을 세우고 있는 형상이다. 인간의 줄기는 혈통으로 이어진 가문 내부의 트리구조이다. 이 줄기를 잇고자 인간은 얼마나 오랫 동안 발버둥쳐 왔으며 지금 또한 얼마나 난리들인가.
끈은 단호하며 비장하다. 줄은 뚝심있고 사교적이다.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고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다. 끈질긴 사람이 있고 줄기찬 사람이 있다. 세상을 끈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줄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줄도 끈도 없이 알알이 고립적으로 살며 외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기존의 것을 잘 유지하고 살아가려는 끈의 사유와 앞을 향한 대열에 서려는 줄의 사유가 있다. 줄초상 나는 줄이 있고 끈 떨어진 줄도 있다.
줄에는 줄의 정신이 있고 끈에는 끈의 정신이 있다. 옛날 ‘빤스’는 천끈을 넣거나 고무줄을 넣었다. 천끈은 묶어 조이는 것이고 고무줄은 저절로 조여지는 것이다. 질끈 묶는 힘은 바로 끈의 정신이고, 부드럽게 조여드는 힘은 줄의 정신이다. 절망한 정신 앞에 끈이 놓여있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에게 그 끈은 줄이 된다. 끈은 끊어진 부위를 의식하는 힘이다. 끄나불이나 끄내기(경상도에선 끈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는 끈의 끝을 주목하는 말이다. 끊어지는 것을 잇고자 하는 마음은 긴장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줄은 양쪽을 연결하고 있다.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거미줄은, 쌍방향으로 연결된 줄들이 이룬 줄의 세계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정보와 정보 사이, 세상과 세상 사이에 급속히 놓여지는 줄들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태초엔 끈이 있었고 미래엔 줄이 있다. 끈의 운동과 줄의 운동이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삶 전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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