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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눈물의 미학…'마크 로스코'의 단순한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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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 1956년.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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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부터 100일간 예술의전당서 로스코 대규모 회고전
1940~1970년 작품 50점 대거 전시
스티브 잡스의 사색을 이끈 로스코의 그림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붉은색, 검은색, 파란색 등 두 세 개의 네모난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된 그림. 이 단순한 그림 앞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명상에 빠져든다.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을 거대한 캔버스에 집약시킨 마크 로스코(1903~1970년)의 작품들이다.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1955~2011년)가 말년에 로스코의 그림으로 사색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가졌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위치한 작은 예배당인 '로스코 채플'엔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상징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검은색 계열로 칠해진 로스코의 작품 14점이 걸려 있을 뿐이다. 죽음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서 관객들은 오히려 마음을 치유한다. 이곳은 영혼의 안식을 느끼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명상의 공간으로 유명하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코가 생전 언급한 얘기 속에는 인간의 감정을 향한 집요함이 느껴진다.

'추상표현의 대가', '평면회화의 혁명가'로 불리는 로스코의 원본 작품 50점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국내에서 마련된다.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 순회전으로, 앞서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는 첫 주에만 1만 명이 몰리며 20년 만에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한 바 있다.
국내 최초 로스코 회고전을 앞두고 지난 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철학자 강신주(48)씨가 직접 로스코를 소개하고 나섰다. 그는 이번 전시에 맞춰 로스코의 그림이 담긴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강씨는 "나는 로스코를 '추상표현주의' 보다는 '소통표현주의' 화가라고 부르고 싶다. 같은 시대 추상표현주의 계열에는 (액션 페인팅으로 알려진) 잭슨 폴록이 있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는 20~30%가 운다"며 "로스코는 스스로 자기작품을 전시할 때면 직접 전시장에 나와 관람객의 표정을 살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1950년대 전후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추상표현주의'라는 미술사조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실험적인 방식들을 일컫는다. 19세기 초 카메라의 등장으로 미술은 실제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서 작가의 심상을 녹인 인상주의를 필두로 해 20세기엔 내면 자체를 표현하는 양식으로 나아갔다. 강씨는 "당시 작가들은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가졌다. 작가 고유의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 극한까지 닿은 작가가 바로 마크 로스코"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1940년대 초기작부터 1960년대 말년작까지 로스코의 전 생애 작품을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지하철 판타지'(1940년)란 구상 작품부터 다채로운 색감들을 여러 형태로 배치한 추상작품들에 이어 과감해진 직사각형 색 덩어리를 위 아래로 배열한 대형 유화작품들이 나온다. 또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다수의 벽화를 그려 예술가적 면모를 보였던 로스코의 작품들도 나오는데, 바로 뉴욕 시그램 빌딩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에 그려진 벽화의 스케치들이다. 그리고 1970년 작가가 면도날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기 직전 그렸던 '무제'란 작품도 있다. 강씨는 "죽기 한 달 전 그렸던 핏빛을 연상하게 하는 '무제'라는 그림은 전성기 때의 빨간색 그림들과는 다른 느낌"이라며 "말년 3~4년을 계속 검정색 톤으로 죽음과 숙명에 몰두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이 마지막 그림은 마치 검은 색에서 빠져나오려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마크 로스코, 넘버 2, 1947년.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 넘버 2, 1947년.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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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 1970년.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 무제, 1970년.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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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는 작품 안의 네모난 색 덩어리를 '배우', 자신의 그림을 '드라마로서의 회화'라고 칭한바 있다.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담아내려 했던 그림에는 색깔과 색깔이 서로 맞닿는 경계선상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비극적인 관념을 끄집어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했던 그는 무엇보다 세상의 아픔과 부조리를 표현하려 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해 생활하는 가운데, 1·2차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황을 겪으며 가난과 전쟁을 경험한 그의 인생이 이를 짐작케 한다. 로스코는 "그 많은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절대 내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는 이들에 두고 혐오감을 표출했던 적도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전시장 안에는 그의 말년시절 검은색 그림 7점으로 로스코채플을 재현해 놓을 예정"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위로와 치유를 주는 로스코의 예술세계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23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32-4407.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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