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원인은 "연말정산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게 규제개혁이며 혁신적인 국가행정 개선"이라고 건의했다. 그는 "매월이나 두 달에 한 번 간단하게 원천징수 관련해서 정산해버리든지 아니면 다른 개선방향으로 세법체계를 연말정산하지 않도록 바꾸든지 답답하다"고 푸념했다.
세금을 규제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정부와 국회의 잘못이 가장 크다. 정부와 세정당국은 틈만 나면 조세정의, 과세형평성 원칙을 외쳤지만 결국 이런 원칙은 유리지갑 임금근로자에만 적용돼 왔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대기업ㆍ중소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세금을 올리지 않았고, 수출기업엔 수출용 원부자재를 수입해 수출하면 관세를 돌려줬다. '증세 없는 복지'의 재원 마련을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 역시 경제활성화 논리 앞에서 무력화됐다.
세금을 깎아주거나 덜 걷고나서 예상보다 수혜자들의 호응(고용이나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경우)이 적을 경우 세무조사라는 칼을 들이댔다. 4대 의무 가운데 납세만 유독 권력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 아닐까 싶다. 국회도 정부에는 "세금을 잘 걷어라", 기업엔 "세금을 잘 내라"고 하고선 비과세ㆍ감면을 줄이려면 반대하고 오히려 이를 확대해왔다.
'증세 없는 복지'든 '복지를 위한 증세'든 이런 논쟁에 앞서 '세금도 규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규제라면 세금은 착한 규제가 돼야 하는데 요즘은 단두대에 올려야 할 나쁜 규제로 비춰지는게 더 큰 걱정이다. 천국에는 세금이 없다고 해서 조세피난처(tax heaven)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지옥에도 세금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적정과세 문제다. 세금의 가치를 납세자들이 제대로 인정을 할 때 납세순응도도 높아지고 재원 확보도 가능하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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