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 진실을 요구하고, 인간과 역사와 자연과 우주에서 옳은 것을 구하지만, 달의 이면처럼 영원히 가려져 있거나 영원히 진실과 만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적인 옳음이 되는 일이 불가능한 까닭은, 인간이 그 옳음을 판별하고 인식할 만한 능력과 환경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옳음이란 한 걸음 물러서서 상대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겸허히 자신의 옳음을 수정할 가능성을 전제해야 한다.
옳음의 싸움은, 절대적인 옳음이 있다고 믿는 신화 아래서의 싸움이다. 누구도 그 신화를 믿지 않지만 누구도 그 신화가 제공하는 논리적 투구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정치의 옳음은 당파의 옳음이며 당파가 채택한 제한적 국민의 옳음이 될 수 밖에 없다. 경제의 옳음 또한 가진 자의 옳음이거나 못가진 자, 혹은 덜 가진 자의 옳음을 전체로 해석하여 어떤 이익에 복무하고자 하는 전략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우리가 이미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적실하고 가장 긴요하며 가장 널리 파급되는 효용을 지닌 옳음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옳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또 다시 생각하면 달의 뒷모습처럼 우리에게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는 옳음마저 추구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옳음의 절대적 양상을 젖혀 놓는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옳음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옳음에 대한 겸허와 옳음에 대한 추상같음은 이렇게 늘 꼬리를 물고, 인간의 분별을 불심검문한다. 달은 말없이 흐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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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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