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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도라지 위스키가 뭐죠?(39)

최종수정 2014.05.13 06:47 기사입력 2014.05.13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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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얘기하다가,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도라지 위스키가 뭐죠?” 명색이 옛날다방 주인으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유통되던 도라지 위스키를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체면이 말씀이 아니렷다. 우선 그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서 그 대목을 불러보자.


궂은 비 내리는 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슬픈 색서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슬픈 색서폰 소릴 들어보렴.


그러니까 도라지 위스키는 옛날다방이 내놓던 고급 메뉴다. 도라지 위스키는 국산양주의 상표 이름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유통되었다고 한다. 주정(酒精)에 색소와 향료를 섞어 만든, 소주와 비슷한 ‘짬뽕양주’였다. 옛날다방들은 커피를 주메뉴로 하고 있지만 커피 한잔을 팔아선 별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점 때문에 여러 가지 변칙을 쓰는데, 그 중의 하나가 메뉴 개발이었다. 커피에 날계란을 동동 띄워 아침을 굶고 다방에 와 죽치는 ‘묵고지비’들에게 서비스를 하기도 하고, 쌍화차나 반숙 계란도 팔았다.

커피 메뉴의 문제점은 손님들이 절대로 두 잔을 거듭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짜 리필? 그건 거론하지 않는게 좋다. 옛날 통술집(가운데 드럼통을 놓고 둘러앉아 마시는 술집)에선 막걸리를 팔았는데 그 양은주전자는 어김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왜 그런지 아는가? 주인 쪽에선 막걸리를 덜 담으려고 우그러뜨리고, 손님은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그걸 펴느라고 이곳저곳 밀고당긴 탓이다. 그런 부족함과 갈증의 시대였으니, 리필이 될 리 있었겠는가.

오히려, 손님 주머니에서 돈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는 메뉴가 없을까 하고 고심하던 때였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위스키티’였다. ‘위티’라고 더 흔히 불렸던 위스키티는 원래 홍차에다 약간의 위스키를 타서 맛을 상쾌하게 만든 음료였다. 그러나 다방에서는 그 비율을 반대로 했다. 홍차는 병아리 눈물 만큼 타고, 대신 그 나머지를 위스키로 채워 팔았다. 다방에서는 술을 팔아선 안된다는 그 시절의 금칙을 그런 눈가림으로 위반한 셈이다. 위티는 당시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술집에서 마시는 위스키에 비하면 값이 훨씬 싼데다, 잔으로 마시니 부담감이 작기도 했다. 하지만 다방에선 그게 가장 비싼 메뉴였고, 사실 대부분의 다방 출입객들은 빈털터리인지라 그 메뉴를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바지 뒷주머니에 도끼빗을 꽂고 머리에는 들기름을 바른 한량 하나가 들어와 엄지와 검지를 맞눌러 비틀며 따악, 소리를 내면서 ‘여기 위티 한잔!’이라고 시키면 다방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모두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런데 그가 ‘위티 더블!!’이라고 외치기라도 하면 손님 중 몇이 슬그머니 그 자리로 와 앉아 수작을 걸며 혹시 자기도 한잔 시켜줄까 이녘 눈치를 살피는 풍경도 흔했다.


도라지 위스키는 위티에 들어가던 국산양주였다. 가수 최백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도라지 위스키를 맛본 마지막 세대였다’는 얘기를 한다. 비싼 위티를 마시는 손님이니 자연히 그 다방의 귀빈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색서폰 소리를 들으며 옛사랑 생각에 빠지는, 돈 잘 쓰는 노신사이니 당연히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마담이 곁에 앉아 농담을 들어줬으리라. 이 땅에 자본주의가 들어오던 시절의 기억들은 ‘미국의 개척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 생각하면 뭐든지 다 촌스럽고 우습지만, 그땐 그런 것들이 삶의 질서였고, 시대의 기분이었고, 유행의 넘실대는 물결의 전위였다. 인삼 위스키에서 한 급을 낮췄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은, 물론 지금 입맛으로 꿀꺽 삼켜보면 씁쓸하고 골때리는 싸구려에 틀림없겠지만, 추억이란 이름의 향신료 때문에 괜히 코끝이 찡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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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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