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수십억佛 익명 기부…자신은 빈손
척 피니는 면세점 듀티 프리 쇼퍼스(DFS)의 공동 창업자다. 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친 1931년 미국 뉴저지주 엘리자베스에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에 복무했다. 이 때 경험을 토대로 대학 졸업 후 미 군함에 면세 술을 팔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 각국의 주요 항구와 공항에 점포를 늘려갔다. 그의 사업은 일본 경제 성장과 맞물리면서 급성장했다. 주머니가 두둑한 일본인들의 해외여행이 늘면서 면세점에서 돈을 펑펑 쓴 탓이다.
하지만 피니의 현재 재산은 200만 달러(22억원)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남몰래 기부한 탓이다. 세상에선 아무도 몰랐다. 1996년까지 포브스의 세계 부자 순위 23를 기록했던 그는 이미 1984년 아틀란틱 자선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면세점 지분 38.75%를 넘겼다. 75억 달러에 달하는 이 기부금은 그동안 62억 달러가 사용됐다. 미국과 호주, 베트남, 남아프리카, 아일랜드 등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과학, 의료 사업에 쓰였다. 2016년까지 나머지 13억 달러가 모두 사용되며 2020년에는 재단도 문을 닫는다.
기부 방법도 독특했다. 다른 부자들이 자선 활동을 언론에 알리려 애쓰는 것과 반대로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이 밝혀지면 지원을 끊겠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수혜자들이 마피아의 돈으로 의심했을 정도다. 기부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7년 피니가 루이뷔통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LVMH에게 DFS의 지분 일부를 넘기면서다. 피니의 전 재산이 아틀란틱 재단 소유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통 큰 기부는 많은 재벌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재벌계 기부의 왕으로 꼽히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척 피니가 나의 롤모델”이라고 할 정도다. 피니가 악착같이 재산을 모은 이유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피니는 최근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행복하고, 돕지 않을 때 불행합니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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