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뮤지컬 배우 김보강(29)은 애초부터 '음악' 할 운명이었다. 판소리 하는 국악인 할머니와 1980년대 록밴드에서 키보디스트와 보컬로 활동했던 아버지 외에도 '나만의 방식' 등 90년대 꽤 많은 히트곡을 가진 가수 김기하가 바로 그의 삼촌이다. 그는 가업을 잇는 기분으로 자연스레 밴드의 보컬을 직업으로 택했다. 183cm의 훤칠한 키와 단단한 몸,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와 마스크를 무기로 김보강은 한 때 미사리 카페촌을 석권하며 대형 기획사들의 섭외 1순위 배우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가 뮤지컬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서 예수 역으로 전격 캐스팅 되면서부터다. 예수는 극의 주연인 막달라 마리아의 상대 역으로, 연기 경험이 일천한 신인 배우가 맡기에는 과분한 배역이었다. 다만 아무런 대사 없이 노래만 하면 되는 캐릭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판소리와 록 음악이 지배하는, 게다가 불교를 믿는 집의 큰 아들이 가볍고 간지러운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에서 예수 역으로 등장한다니 그럴만도 했다.
상당한 인기를 누린 동명의 TV 드라마를 뮤지컬로 옮긴 '환상의 커플'(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7월 30일까지) 공연을 통해 그는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시골 어촌에서 두 조카와 함께 사는 '촌놈' 로맨티스트 장철수가 그가 맡은 배역이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조안나(일명 나상실)와 짝을 이뤄 달콤살벌한 로맨스를 펼친다. 예전 같으면 자신만 튀려고 안달이 났겠지만 이제는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성숙해졌다. 그는 나상실의 매력을 부각시키려고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연기의 30%만 보여지도록 꾹꾹 눌렀다. 영리하고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김보강이 연기하는 장철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다구니를 치는 나상실과 묘한 화학반응을 이루며, 훨씬 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남자 캐릭터로 거듭났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이재문 기자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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