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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 학제 융합은 이타적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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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십수년 동안 한국사회는 학문 진흥과 발전을 위해 학제(學際ㆍdisciplinary)에 의한 제식구 감싸기와 밥그릇 챙기기를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국가발전의 동력으로서 '학제 간 연구'를 권장해왔다. 학제 간(學際間ㆍinterdisciplinary) 연구는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제휴해 참여하는 연구방식을 가리킨다. 1960~80년대까지 고속산업사회의 성장을 주도하는 주체적 역할로서 학제적 연구가 스스로 수행한 성과에 만족하며 오랫동안 정체돼있던 탓에 변화의 조건이 생겨난 이유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글로벌 환경 조건 아래 급변하는 세계의 패러다임은 우리의 생활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의식구조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현기증을 느낄 만큼 빠른 변화에 맞춰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제 방식을 벗어나 학제 간 협력을 전제로 새로운 연구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너'와 '나'를 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주장하기 보다는 '너'의 장점을 인정함으로써 상호협력을 유도해 '우리'의 미래적 가치를 위해 변화된 패러다임에 맞는 공동의 목표를 모색하려는 취지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학제 간 연구'가 제대로 추진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은 최근 연구현장에서 빈번하게 제기돼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섭'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융합은 학제 간 연구를 위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방법론이다. 이 방식은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학제 간 연구를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다. 융합은 서로 다른 학제의 특징을 살리면서 각자의 속성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조합방식으로 목표가 설정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표현해 새로운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모형을 각기 다른 집단에서 저마다의 특기와 속성을 추출해 완성한 조합방식이 협동이라고 한다면 융합은 '나'와 '너'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나와 너를 통해 만들어낸 통합이다. 이 때의 통합은 협력이 만들어낼 수 없는 시너지를 창출하며 학제의 틀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절하게 적응한다.
융합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일부 연구 동향들은 기존의 협력에 의한 '자신들의 리그'를 만들기 위한 허울에 불과한 경우가 다반사다. 융합은 사전적 의미로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스스로를 맡기는 과정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특권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의미가 내포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연구 방식과 영역에서 나의 기득권은 작용할 수 없다. 그것이 융합이다.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는 일'이 융합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과연 융합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구호와 말뿐인 융합을 얘기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니고 있는 특성과 속성을 다른 이들의 그것들과 함께 추출해 새로운 방식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연구 성과를 추진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모험일 수밖에 없다.

학제 간 연구가 글로벌 환경의 필요성과 정부의 전략과 목표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현 가능한 연구로서의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정책 입안자와 연구자, 학교 당국의 책임 있는 개념 정립과 의식 설정이 우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늦은 일이란 없는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방식의 협력 연구를 통해 실현가능한 융합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할 일이다.



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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