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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배출권리' 사고팔면 환경이 깨끗해진다니[송승섭의 금융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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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한 경제학자
규제, 세금말고 "서로 권리를 사고팔게 하자"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인정받은 배출권 거래
2015년 도입한 한국, 시장 활성화는 숙제

“바다숲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도입하겠습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0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탄소배출권이란 기업들이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제도입니다. 이미 민간시장에 적용돼있는 상태인데 이걸 해양환경 정화에도 활용하겠다는 거죠.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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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탄소배출권은 환경부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아주 중요한 정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국가가 ‘배출할 권리’를 준다니요. 배출권을 많이 산 기업은 오염물질을 마구 내뿜을 텐데 어떻게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말일까요?

한국에서는 탄소배출권을 ‘배출권거래제’로 부릅니다.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는 사업장에 ‘배출권’을 주고요.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가령 어떤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였다면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죠.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뿜어야 한다면 눈치 보지 않고 다른 기업에서 배출권을 사 오면 됩니다. 기업이 배출권을 가진 만큼 마음껏 탄소를 배출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환경 등 사회문제, 서로 사고팔면서 해결"

그런데 배출권거래제는 어떻게 환경보전에 도움이 될까요? 배출권거래제의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입니다.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요. 코즈는 ‘왜 환경오염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하는지’를 고민했던 학자였습니다. 코즈는 ‘누가 비용을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사회문제가 생긴다고 봤습니다. 재산권과 책임, 비용만 명확하게 정해주면 저절로 환경오염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죠.


로널드 코즈 전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 교수. 1960년 발표한 논문 '사회 비용의 문제'로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진=노벨재단 기록 보관소.

로널드 코즈 전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 교수. 1960년 발표한 논문 '사회 비용의 문제'로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진=노벨재단 기록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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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을 예로 들어볼까요? 시끄럽게 음악을 연주하는 A씨와 소음에 시달리는 B씨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A씨는 ‘음악을 편안하게 연주할 권리’를 누리면서 월 100만원의 행복을 얻습니다. 반면 B씨는 ‘편하게 쉴 권리’를 침해당해 월 70만원의 피해가 생겼습니다. 코즈는 A와 B가 서로 협상을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얘기합니다. A씨가 B에게 70만~100만원 사이의 금액을 지급하면 서로 아무런 불만이 없죠.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에서 방류하는 폐수 때문에 물고기가 죽어 어부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공장이 폐수를 방류하면서 얻는 이익이 100만원, 어부들의 피해금액이 50만원이라면? 공장이 어부들에게 50만원에서 100만원을 지급하면 됩니다. 공장입장에서는 폐수를 방류할 권리를 돈으로 산 것이죠. 반대로 어부들이 받는 피해금액이 200만원이라면 어떨까요? 어부들은 100만원 이상의 돈을 주고 공장이 폐수를 방류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공장을 압박해 폐수방류를 못 하도록 압박하게 되겠죠.


이런 아이디어에서 배출권거래제가 출발했습니다.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얼마나 많이 하고 적게 하는지 일일이 따지지 말고, 그냥 원하는 사람들이 배출권을 주고 서로 사고팔게 하자는 거죠. 매월 1000t의 탄소배출을 뿜는 C나라가 배출량을 900t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나라라면 총량을 900t으로 정해버리면 됩니다. C나라 기업들은 선택만 하면 되죠. 어떤 방법을 쓰든 배출량을 줄이던가, 그냥 다른 기업에서 배출권을 사 오던가. 기업들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국가는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거죠.


'탄소세'보다 오염물질 '총량' 줄이는데 효과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 오염물질의 총량을 제도 시행 이전보다 줄일 수 있다. 사진=환경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 오염물질의 총량을 제도 시행 이전보다 줄일 수 있다. 사진=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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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배출권거래제를 모두에게 허용한다면 더 과감하고 빠르게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보통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을 비판하고 지적하고 시위하는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보호단체가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문제해결이 더 쉬워집니다. 환경단체들이 돈을 모아 배출권을 대량으로 사버리면 그만이죠. 환경단체가 배출권을 많이 살수록 기업의 탄소배출이 줄어드니까요. 우리 사회가 내뿜는 오염물질의 총량도 그만큼 감소할 테고요.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하게 거래시장을 만들지 말고 그냥 세금을 때리면 되잖아’ 라고요. 탄소마다 세금을 매기면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일괄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것이고, 환경에도 더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실제로 ‘탄소세’는 여러 국가에서 도입한 제도이고 여러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탄소세의 단점도 분명 있습니다. 탄소세는 능동적인 대처가 어렵습니다. 새로운 오염물질이 발견되거나 더 이상 오염물질로 여겨지지 않게 되면 탄소세율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세금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는 아주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라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오염저감기술개발 측면에서도 배출권거래제가 유용합니다. 배출권거래제에서 기업들은 탄소배출을 줄일수록 보유한 배출권을 팔아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반면 탄소세는 그러한 이득이 없죠.


1997년 12월 교토의정서를 이끌어낸 일본 교토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 현장. 앨 고어 당시 미국 부통령이 회의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브리태니커

1997년 12월 교토의정서를 이끌어낸 일본 교토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 현장. 앨 고어 당시 미국 부통령이 회의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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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이 이론 연구를 거쳐 현실에서 처음 적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입니다. 당시 채택된 의정서에 배출권거래가 효율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로 인정됐죠. 이후 2005년 유럽연합이 처음으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했습니다. 1990년보다 탄소배출량을 8% 줄이기 위해서요. 이후 호주, 일본, 뉴질랜드가 따라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죠. 한국은 2015년에 배출권거래제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가격 폭락에 거래량도 저조…시장 활성화 숙제

다만 배출권거래제가 실제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하려면 더 많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배출권은 국가가 기업에 부여하는데 돈을 받고 주는 ‘유상할당’과 공짜로 나눠주는 ‘무상할당’이 있습니다. 탄소배출이 많고 비용부담이 높은 기업들에게는 ‘무상할당’을 주는데 한국은 유상할당 비중이 10% 정도입니다. 환경오염을 줄이려면 기업들이 돈을 내고 배출권을 사야 하는데, 지금은 공짜로 나눠주다 보니 기업들이 배출량을 잘 줄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래량이 적고 가격이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탄소배출권은 가격이 비싸고 거래도 활발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최대한 다른 기업에 팔려고 노력할 것이고, 자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려 할 테니까요. 그런데 한국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는 추세입니다. 17일 기준 탄소배출권(KAU23)의 가격은 종가기준 8950원이었습니다. 1년 전 1만1250원과 비교하면 20%가량 감소했죠.


2015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국내 할당배출권(KAU) 가격 추이. 사진=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2015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국내 할당배출권(KAU) 가격 추이. 사진=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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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 규제를 풀어주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배출권을 미리 사뒀다가 나중에 쓰는 게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배출권을 잘 사고팔지 않죠. 10년 뒤에 배출권이 많이 필요해질 것으로 예측해도, 지금 구매한 배출권은 쓸모가 없으니 굳이 구매를 시도하지 않는 거죠. 만약 구매한 배출권을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게 허용해준다면 기업들이 배출권을 더 활발하게 사고팔 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옵니다.


윤여창 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배출권거래제의 시장기능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월 제한은 배출권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배출권 시장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이월 제한을 조속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편집자주경제와 금융은 어렵습니다. 복잡한 용어와 뒷이야기 때문이죠. 금융라이트는 매주 알기 쉬운 경제·금융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경제·금융에 '불'을 켜드립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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