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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톡]"이민 막는다면 해외로" '슈퍼을' ASML의 고민거리된 네덜란드 반이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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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고숙련 노동자 세제 혜택 등 폐지에
ASML '외국인 40%' 본사 이전 가능성 시사
붙잡기 나선 정부, 3.8조 투자 계획 공개
반도체 업계, ASML 행보에 주목

"훌륭한 인력이 충분히 있을 때 비로소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 인력을 구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1월 기자회견)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극우 성향의 자국 의회가 내놓는 반이민 정책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일 등 주요국이 반도체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오히려 강점이었던 파격적인 인재 유인 정책을 내려놓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의 '슈퍼을' ASML의 본사 해외 이전 가능성에 현지 정부는 일단 대규모 지원책으로 달래기에 나섰다. ASML의 움직임에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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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 '베토벤 작전' 3.7兆 투자로 ASML 붙잡기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8일(현지시간)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지역에 예산 25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긴급 동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에인트호번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망 등을 전반적으로 개선키로 했다. 또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해 새로운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자 의회에 관련 내용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내각은 성명에서 "이러한 조처를 통해 ASML이 지속해 투자하고 법상, 회계상 그리고 실제 본사를 네덜란드에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갑작스럽게 이러한 정책을 내놓은 이유는 ASML이 자국에서 반이민 정책이 강화되는 점을 들어 본사 이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앴다. 의회에서 지난해 말 관련 법안을 통과하면서 나온 조치였다. 고숙련 이민자로 인정되면 급여의 30%를 5년간 비과세 처리해주는 세제 혜택인 일명 '30% 룰링'은 글로벌 인재를 네덜란드로 끌어모은 핵심 정책이었다. 최근에는 대학 내 외국인 학생 수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표됐다. 대학에서 외국인 인재를 양성해 확보해왔던 네덜란드 기업의 입장에서 인재 확보에 난관이 예상됐다. ASML뿐 아니라 NXP세미컨덕터 등 네덜란드의 주요 기업들이 최근 반발을 쏟아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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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쏟아지는 이러한 반이민 정책은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강경 우파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승리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민 제한을 공약으로 내건 PVV가 승리한 이후 새로 출범한 의회의 극우 성향이 짙어지면서 의회에서 반이민 관련 법안이 잇따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 중인 새 연립정부 구성이 완료되면 반이민 정책은 실제로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 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 늘어난다는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내놓은 법칙)' 선봉에 서 있던 ASML이 이제는 지정학과 국내 정치의 선봉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직원이 성공의 핵심"…ASML엔 144개국 직원이

ASML이 반이민 정책에 본사 이전 카드까지 꺼내며 강경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직원들이 그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왔기 때문이다. ASML의 전 세계 직원 수는 4만2416명이며 총 144개국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네덜란드에 있는 직원은 2만3000여명이며 40%가 인도, 터키, 벨기에, 포르투갈 등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이다. 또 네덜란드 명문대이자 ASML 인근에 있는 에인트호번 공과대의 외국인 학생 65%가 졸업 후 ASML로 향한다고 한다. 그만큼 ASML은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의존도가 높다. ASML이 최근 지속 가능 보고서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직원들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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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닝크 CEO는 30% 룰링이 사라진 지난 1월 기자들과 만나 "네덜란드가 국경문을 닫고 우리가 이민자나 외국인 학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대신)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고 그렇다면 회사가 성장할 수 있고 우리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닝크 CEO는 또 사업을 확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우리는 여기서 사업하는 걸 선호하지만 그 사람들을 확보할 수 없다면 동유럽이나 아시아, 미국에 (거점을 세워) 그들을 데려오도록 하겠다"고 생각을 내비쳤다.

앞서 베닝크 CEO는 지난해 총선 유세 기간에도 반이민 정책 논의가 나오자 "고숙련 이민자들은 네덜란드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거나 "네덜란드 대학 교육이 네덜란드어가 아닌 영어로 이뤄져야 한다"는 등 이민자를 수용해야 한다며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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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은 네덜란드 경제를 이끄는 핵심 기업일 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좌우하는 대표 반도체 장비 업체다. ASML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뒤를 이어 유럽 시가총액 3위 기업이다. 이달 중 시총이 3800억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보통 새 정부를 구성하는 기간에 기존 정부가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네덜란드 경제에서 ASML의 영향력을 감안해 '시한부 총리'인 마르크 뤼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긴급 대책을 급히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초 뤼터 내각이 ASML을 붙잡기 위한 범부처 차원의 정책인 이른바 '베토벤 작전'을 진행 중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 이날 발표된 내용이었다. 2018년 네덜란드 정부가 세제 혜택이 외국인에게 유리하다며 배당세 15% 원천징수 유예를 철회하자 석유기업 셸과 다국적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가 본사를 영국 런던으로 이전한 경험이 있어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고려할 때 본사 이전 쉽지 않아"…CEO 교체도 변수

다만 ASML이 본사 이전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ASML은 현재 전 세계 16개국, 60여개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필립스와 필립스에서 분사된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 ASMI의 합작회사였던 ASML은 1984년 필립스의 에인트호번 사무실 옆 창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5년 에인트호번 인근에 있는 벨트호번에 새로 사무실과 공장을 짓고 그곳에 터를 잡았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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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디지타임스에 "전체 공급망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다"면서 "ASML이 이전하겠다고 말한 적 없다. 해외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용수, 전력 등 인프라는 물론 부품 공급업체 등과의 협력, 인근 대학과의 인력 양성 등 하나의 공급망을 구축해 둬야하는 만큼 본사와 네덜란드 공장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대신 네덜란드 내 추가 투자보다는 해외 사업장 확장하는 것이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수용을 강조해왔던 베닝크 CEO가 다음달 말 임기가 끝난다는 점도 변수다. 2013년부터 CEO직을 맡아 ASML의 급격한 성장기를 이끌어온 그는 다음 달 퇴임한다. ASML의 EUV 사업을 이끌어온 크리스토프 푸껫 최고 비즈니스책임자(CBO)가 뒤를 잇는다. 수장 교체가 회사의 입장을 대대적으로 바꾸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베닝크 CEO가 부처 장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눴던 주체인 만큼 이러한 변화가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ASML 측은 정부가 내놓은 계획안에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ASML은 이메일로 보낸 성명에서 "오늘 발표된 계획이 의회 지지를 받는다면 경영 조건을 강력히 지원할 것이며 우리 사업 확장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취하려는 결정은 (네덜란드에) 계속 머무를지가 아닌 어디서 확장할지에 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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