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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사회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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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박주용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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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물리학과 경제학에서는 히스테리시스(이력현상)라는 개념이 쓰인다. 히스테리시스는 수많은 원자들이 모여 이뤄진 물질이나 많은 사람들이 엮여 살아가는 사회와 같은 복합계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지속된 영향을 받는다는 '기억 효과'를 말한다.


자연에서는 철과 같은 물질을 자석 옆에 갖다 놓았을 때 생기는 자성의 모양이 지금 옆에 있는 자석뿐만 아니라 과거에 접해 있던 자석에도 달려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고, 경제학에서는 환수할 수 없어진 매몰 비용이 여전히 사업체의 결정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가까운 미래 사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영향을 미치는 히스테리시스를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비관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0년 간 1918년 스페인 독감(5000만명 사망), 1957~1958 아시아 독감(1100만명 사망), 1968년 홍콩 독감(100만명 사망), 2009년 돼지 독감(20만명 사망) 등 우리는 주기적으로 등장했다가 종식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종식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히스테리시스가 알려주는 중요한 점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사회 모습이 우리가 지금 취하는 행동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5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의 팬데믹인 흑사병에 관한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급격하게 줄어든 인구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풍요로운 자원과 높은 임금을 누리게 됐다. 유럽은 농노제가 종식되는 계기를 맞았다. 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곡물 재배에서 목동 하나가 양치기 개 몇 마리를 데리고도 가능한 목축으로 업의 대전환을 겪었다. 이처럼 흑사병은 새로운 환경에 처한 인간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기회도 됐지만, 그 이면에는 '흑사병을 일으킨 책임을 묻는다'며 유태인, 외국인, 낭인, 순례자, 로마니(집시)들에 대한 핍박을 일으키는 역할도 했다. 우월한 위생 관념으로 흑사병 피해를 작게 입었던 유태인들은 오히려 그것이 흑사병을 일으켰다는 증거라는 누명을 쓰면서 공동체가 파괴되는 수난도 겪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뜻하는 바는 팬데믹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은 편견과 무지에 근거한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파괴된 유태인 공동체와 살해된 많은 순례자들은 흑사병이 종식되고 나서도 다시 살아올 수 없는 극한의 히스테리시스를 겪은 것이다.


겨울이 가까워지며 우려됐던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고, 경제도 다시 성장하게 됐다는 소식은 약간의 위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직전까지 우리 사회는 중요한 민주적 가치와 합리성의 후퇴를 우려하게 하는 징후들로 시끄러웠다. 부정부패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사회를 열망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변함없이 반복되는 것 같은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 의혹, 국민의 말에 귀를 막은 정책들의 반복적인 실패로 인해 점점 무거워지는 사회적 부담 비용을 보며 과연 무엇이 변했다는 것인지 기대를 접는 이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팬데믹으로 과거와 달리 자유롭게 모여서 목소리를 낼 권리가 제한당하고 있는 상황을 악용해 진실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치의 훼손에 대한 이러한 우려에 귀를 열지 않아,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도 과거보다도 뒷걸음친 사회에 사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박주용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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