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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난 사람]창작자도 정년 있어…끝이라는 두려움서 벗어나려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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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이석원.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96년 그룹 ‘언니네 이발관’을 통해 ‘가수’로 먼저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선보인 자작곡들이 주목받으면서 국내 밴드 음악에 참신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런 그가 ‘작가’로 변화를 모색한 건 2009년. 첫 출간작인 ‘보통의 존재’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후로는 글 잘 쓰는 작가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공감에 흥미를 더한 내용을 술술 읽히게 풀어내는 이석원 작가의 능력은 탁월했다. 놀라운 건 첫 책을 낼 당시만 해도 제대로 일독한 책이 없었다는 사실. 이후에는 재능에 노력을 더해 출간을 이어갔다.


2017년 펴낸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또다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독자들은 책 속 이석원과 ‘포르쉐 그녀’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석원의 개인 블로그에 그녀와의 후속담을 묻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책과 현실을 등치한 독자들의 시선이 저자를 당혹하게 하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장안의 화제’였던 건 분명했다.

8년의 시간이 흐르고 또 한 권의 산문집이 공개됐다. 제목은 4집 앨범명과 같은 ‘순간을 믿어요’(을유문화사). 밤마다 작게 들리는 위층 소음에 잠 못 이루던 책 속 이석원이 참지 못하고 올라갔으나 ‘절대 노크 금지’라는 안내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늦은 밤 아파트 단지를 헤매다 급기야 위층 사람이 운영한다는 식당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는, 추리물에 로맨스를 맛깔나게 버무린 듯한 작품을 내놓은 이석원 작가를 지난 13일 마주했다. 사진이나 글로 기록되는 것에 예민한 탓에 촬영은 얼굴 노출을 최소화해 진행했다.

이석원 작가

이석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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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에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제가 제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이나 글처럼 제가 기록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제 모습과 말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싫어한다. 말도 나중에 보면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이 많다. 30년째 창작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촬영이나 인터뷰가 힘들다.


-다만 책에서 본인을 말하기 좋아하고 웃긴 캐릭터로 소개했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봉인이 해제되는 것인가.

▲양가적인 부분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걸 엄청 좋아한다. 근데 자세히 보면 만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다. 그러고 보면 또 제가 과연 사람을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최근 북토크를 비롯해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출판사에서 잡아주는 이런저런 일정에 참여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최근 사인회를 했는데 처음으로 인원 제한을 뒀다. 그래야 1분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성격상 누군가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사인이나 만남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사실 책 쓰는 것보다 책 내고 난 뒤가 더 신경쓸 것이 많다.(웃음)

-그래도 예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느낌이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지난해 어느 출판사와 연계해 강연을 했는데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생각과 삶이 많이 바뀌었다. 무대에 서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고, 가수를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는데, 이번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 ‘무대에서 뭔가를 얘기하는 일을 내가 좋아했구나’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음악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틈틈이 곡 작업을 하고 있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 활동을 재개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이석원이란 뮤지션이 새로운 곡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창작자에게도 정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흔이 넘으면 예술적 감각이 떨어져 작곡가로서 수명은 끝났다고 본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이유는 뭔가. 그 한계에 맞서려는 것인가.

▲나이 한계에 부딪혀 보겠다는 차원보다는 어떤 숙제 같은 거다. 해내지 못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걸 완벽하게 해소하고 그만두고 싶다. 뮤지션 이석원의 문제는 무엇인가. 왜 만족하지 못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신간 제목이 4집 제목 ‘순간을 믿어요’와 같다. 좋아하는 말인가.

▲책의 주제와 가장 부합하는 말이다. 저란 사람을 평생 지배하는 것 중 하나가 ‘유한성’이다. 모든 건 언젠가 끝이 난다. 근데 전 그게 그렇게 싫다. 제가 죽는 것 말고는 다른 모든 것의 끝을 좋아하지 않는다. 드라마도 끝이 있고, 부모님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걱정거리다.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여자친구에게도 잘하고…. 하지만 두려움이 원동력이 되는 삶에서 벗어나 삶을 누리는 데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책에 담았다. 이건 음악을 하면서도 여러 번 다뤘던 이야기다. 끝에 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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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책 속 연인과는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나.

▲책 내용을 실제 이석원과 분리할 필요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 (허구가 포함될 수 있는) 산문이니까. 근데 책 속 이석원에게 물어보니 ‘잘 만나고 있다’고 한다.(웃음)


-책 내용이 본인 이야기가 아닌 허구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독자분들께서 제 산문을 읽고 이게 진짜일까, 아닐까 궁금해 하시는데, 사실이냐 허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시든 그 느낌을 존중해드리고 싶다. 느끼는 대로 믿으시면 된다. 기본적으로 제 얘기를 쓰긴 하지만 저와 완전히 등치되는 건 아니다. (이번 책과 별개로) ‘나 이혼했다’거나 ‘우리집 형제들 이혼 많이 했다’ 등의 내용을 두고 ‘왜 집안일을 광고하고 다니냐’고 하시기도 하는데, 그건 내밀한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보편적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쓴 거다. 이석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책 속 이야기로 읽으실 때 드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다.


-책에서는 층간소음에 항의하지 못하고 매일 밤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내용이 나온다.

▲피해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층간소음을 너무 힘들어 한다. 오죽하면 (일시적으로) 집을 두 채를 구했겠나. 확률적으로 분산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책에서는 층간소음의 원인이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지금은 해결됐나.

▲지금은 해결됐다. 근데 이게 (통제하기 어려운) 남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더 거슬렸던 것 같다. (책에 언급된 층간소음과 별개로) 두 번째 집을 구했을 때 얘기인데, 그때 바닥에 물 흐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의 집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우리 집 보일러관에 물 흘러가는 소리였다. 근데 그걸 알고 난 뒤부터 그 소리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더라. 행위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소리였는데 내가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더라.


-하지만 작업할 때는 기대치가 높고, 그만큼 자기주장도 세다고 들었다.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 음악할 때처럼 그렇지는 않다. 같이 일하는 사람 입장을 최대한 배려한다. 눈치도 많이 보고 맞추려고 노력한다. 근데 이번 책 편집자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표지나 제목도 고집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 출간작을 포함해서 이번 책에는 공감 가는 짧은 구절이 많다. 평소 틈날 때마다 문장을 떠올리고 다듬는 편인가.

▲평소 어떤 상황을 정의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문장이 생각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록한다. 그랬다가 책을 쓸 때 적절하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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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낼 때만 해도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영상을 좋아한다.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다. 책은 의무적으로, 숙제하듯 읽는다. 첫 책 내기 전에는 진짜 한 권도 안 읽었지만 책을 쓰면서 계속 그럴 순 없지 않나. 요즘은 하루에 3~4시간 책을 읽는다. 애니 프루 같은 미국 작가 책을 많이 읽고, 박완서, 전혜린 작가 작품도 즐겨본다. 요즘 누군가는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생각한다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독서는 분명히 필요한 일이기에 싫어도, 지겨워도 저를 푸시하는 중이다.


-책 곳곳에 먹고사니즘에 관한 고민이 나온다. 냉면집을 차릴 생각까지 했다고.

▲출판 시장이 고사 직전이란 말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시장적인 면에서 망했다고 본다. 일반 도서 판매고를 보면 5~10년 전의 10분의 1로 줄었다. 이전에 10만~20만권을 팔아야 베스트셀러가 됐다면 지금은 3만권만 팔아도 난리가 난다. 작가로서 그런 상황에 초연할 수 없기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계속 써야 할까, 쓴다면 뭘 써야 할까….


-실제로 전업이나 부업도 생각 중인가.

▲인사동에 ‘살롱드언니네이발관’을 다시 차릴까, 아니면 서점을 낼까, 레코드 가게를 낼까 계속 고민 중이다.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다만 책이 안 팔려서 다른 걸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히트작을 내고 그게 잘 됐을 때 넘어가고 싶다.


-저자로 살면서 느끼는 문제의식은 없나.

▲책이 선택받지 못하고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시장의 문제로 여겨 누군가가 해결해준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가치를 못 느끼니까 안 사는 것 아닌가. 열심히 노력해서 잘 팔리는 작품을 쓰고 싶다. 최고의 마케팅은 원고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느낌이 좋다.(웃음) 북토크 섭외도 많이 들어오고, 어느 서점에서는 ‘작가의 방’을 꾸며준다고도 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돈 주고 책 사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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