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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책섶] 판을 뒤집은 교란자들의 비밀

최종수정 2020.02.14 14:05 기사입력 2020.02.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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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밀 누설 가능성에도 네트워크 취약점 찾기 위해 해커고용한 국방부 DDS 등
혁신발상으로 기존시장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 만든 사례 소개

지난해 방송가를 휩쓴 30년 전 가수 양준일, EBS 연습생 펭귄 펭수,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등장은 혁신을 넘어 교란이 시장을 재편한 디스럽터(교란자)의 신선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미지 = 이진경 디자이너

지난해 방송가를 휩쓴 30년 전 가수 양준일, EBS 연습생 펭귄 펭수,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등장은 혁신을 넘어 교란이 시장을 재편한 디스럽터(교란자)의 신선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미지 = 이진경 디자이너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해 방송계는 혁신 그 이상의 교란이 지배했다. 30년 전 활동했던 가수 양준일이 과거 영상의 역주행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남극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열 살 펭귄 펭수는 EBS를 넘어 다른 방송사까지 누비며 연일 화제가 됐다. 이어 데뷔 30년 차 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해 방송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차지했다. 방송가 트렌드 역시 물 흐르듯 레트로와 본캐(원래의 캐릭터)·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콘텐츠로 흘러가고 있다.


방송가의 고루한 판을 뒤엎은 교란의 성공 배경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영국의 경영 전문가 데이비드 로완은 ‘진짜 혁신’을 만든 교란자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기존 시장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분열시키면서 성공한 디스럽터(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의 사례가 신저 ‘디스럽터: 시장의 교란자들’로 모아졌다.


미국 국방부 내 특수 부서인 국방 디지털 서비스국(DDS)은 2016년 전문 해커를 고용해 정부 네트워크 해킹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시행 중인 보안 취약점 신고 포상제, 다시 말해 ‘버그 바운티(bug bounty)’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DDS는 국가 기밀이 누설될 수 있음에도 정부 네트워크에서 취약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미 국방부는 이 프로젝트에 겨우 15만 달러(약 1억 8000만원)를 썼다. 하지만 이를 통해 막아낸 잠재적 피해 규모가 100만 달러에 달했다.


정부 차원에서 국경을 없앤 에스토니아의 사례는 더 흥미롭다. 온라인 신청 후 100유로(약 12만 9000원)만 내면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전자 시민권으로 여권과 입국, 거주권을 보장받진 못하지만, 창업과 경제 활동은 가능하다. 회사 설립과 은행계좌 개설은 하루면 충분하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서비스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결혼과 이혼, 부동산 거래를 제외한 모든 행정 업무의 온라인 처리가 가능해졌다. 특히 2005년 세계 최초의 인터넷 선거 도 입으로 투표율을 끌어올렸는데, 이는 유럽연합 (EU)의 투표를 온라인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2018년 10월까지 4만 5000명이 에스토니아 전자 시민권을 받았으며, 에스토니아는 수수료와 경기부양 효과로 2025년까지 18억유로를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희윤의 책섶] 판을 뒤집은 교란자들의 비밀

지난해부터 국내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호주의 콴타스항공이 구축한 로열티 프로그램은 획기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콴타스는 2014년 손실 28억호주 달러(약 2조 2280억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되레 20억호주 달러(약 1조 6000억원)나 역투자해 고객이 생활 속에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셔츠 한 벌을 드라이클리닝해도, 심지어 반려견을 산책시켜도 해당 기업에서 콴타스 포인트 적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고객 경험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든 콴타스는 2017년 국제선 항공권보다 포인트 판매로 더 큰 수익을 기록했다.

홍콩철도유한 공사(MTR)는 홍콩의 지하철·버스 노선을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하지만 연간 수익의 절반 정도가 부동산 사업에서 비롯된다. MTR는 1979년 첫 노선 개설 이래 지하철역 개발 단계에서부터 주변 토지를 매입해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협상했다.역 주변 개발권을 주고 현물자산을 확보한 MTR의 시스템은 ‘철도+자산(Rail Plus Property)’ 모델로 자리 잡았다. MTR는 지금까지 약 39조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 부동산 개발의 천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파괴당하는 게 아니라 먼저 파괴하는 발상은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에 뼈아프고 낯설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구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고객의 만족을 위해 과감하게 교란하고 파괴하는 선발주자들만이 가짜 혁신이라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디스럽터 시장의 교란자들/데이비드 로완 지음/김문주 옮김/쌤앤 파커스/2만 2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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