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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천자]작가의 루틴<4>-이현호의 '한 꽃나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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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를 위해 매일 천자 필사 콘텐츠를 제공한다. 필사 콘텐츠는 일별, 월별로 테마에 맞춰 동서양 고전, 한국문학, 명칼럼, 명연설 등에서 엄선해 전달된다. 오늘은 젊은 작가들의 일상과 글을 쓰기 위한 마음가짐을 담은 책 <작가의 루틴 : 시 쓰는 하루> 중 이현호 작가의 <한 꽃나무를 위하여>를 인용한다. 글자수 855자.
[하루천자]작가의 루틴<4>-이현호의 '한 꽃나무를 위하여' 원본보기 아이콘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창문은 나와 바깥세상을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다. 그 창구가 보여 주는 세상은 한결같다. 우리 집은 이 층이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까치발을 들면 뭇 지상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만, 책상 의자에 앉아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단풍나무 한 그루와 전나무 두 그루의 상반신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하늘뿐이다.


세상의 모든 창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화다. 액자에 표구한 그림과 달리 창틀에 끼워진 그 그림은 살아 움직인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 동안도 아침과 점심과 저녁의 풍경이 다르다. 지금은 늦가을 어느 날의 정오 무렵. 나는 붉디붉은 단풍나무와 그에 대비되어 더욱 푸르게 빛나는 전나무를 바라본다. 두어 시간쯤 뒤에는 저 나무들 뒤로 구름이 걸릴지도 모른다. 또 몇 시간이 지나면 노을빛이 묻은 나무들의 모습이 아름다울 테다. 나는 익숙하지만 한 번도 똑같지는 않은 이 풍광을 좋아한다. 모니터 화면을 오래 쳐다봐서 피곤할 때면, 고개를 들고 저 풍경화에 지친 눈을 씻는다.

언제 저렇게 빨갛게 물들었을까.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단풍나무가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잎사귀와 잎 사이에 파묻힌 이파리의 색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 꼭 인상파 화풍 같다. 이윽고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돌린다. 창문이나 모니터나 네모반듯한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그것을 보는 마음가짐은 아주 다르다. 전자가 이완과 환기의 시간이라면, 후자는 긴장과 집중의 시간.


나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있던 몸을 바로잡는다. 앉은 자리에서 두 팔을 머리 위로 길게 뻗으며 스트레칭하고, 심호흡도 한다. 풀어졌던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글을 쓸 때다.


-이현호 6인, <작가의 루틴: 시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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