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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100일]②美, 9·11트라우마 10년 관리…재난조사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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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재방방지 위한 기초자료 '생존자'
생존자와 유가족 국정조사 배제
710쪽 보고서 중 재발방지대책은 7장에 불과

“제 상식과 가장 큰 차이는 이런 국정조사 자리에 혹은 관련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 유가족들, 혹은 피해자들, 피해를 입은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재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들이다."

이태원참사 국회 국정조사 전문가 공청회 자리에서 나온 지적이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재난의 2차 피해자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규모 참사의 경우, 재발 방지를 위해선 이들에 대한 증언과 자료 수집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참사 이후에도 역시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진술할 수 있었던 시간은 2차 공청회뿐이었다. 이미 현장조사와 기관보고, 청문회를 모두 마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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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국정조사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첫 일정이었던 지난해 12월21일 현장조사 참여를 요구했지만, 불발됐다. 이들은 이태원파출소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용산구청 폐쇄회로TV(CCTV) 종합관제센터에서도 쫓겨났다.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이었다. 이법 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개인정보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청문회 과정에서도 유가족들은 외면당했다. 2차 가해를 받고 있던 유가족들은 국정조사 참여를 요구했다. 하지만 청문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참관석에서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닥터카 논란을 끈질기게 질의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회의장 밖에서 거세게 항의했고, 조 의원은 "(민주당과) 같은 편이네"라고 망언하기도 했다. 재난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상민 장관은 유가족이 참석한 국조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국정조사가 정쟁으로 얼룩지면서 생존자나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2차 기관보고에서 유가족 및 부상자 지원을 다룬 내용은 3쪽에 불과했다. 여야 모두 국정조사에서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숫자다. 지난해 12월12일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고등학생 한 명이 트라우마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청문회에 부른 관련 증인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등 6명에 불과했다. 결과보고서의 종합의견에서 트라우마는 단 한 쪽 분량만큼 다뤄졌다. 이 마저도 "지속적 심리상담 제공", "경찰 차원 2차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 포괄적으로 언급에 그쳤다. 마약범죄가 종합의견에서 4페이지 분량으로 다뤄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또 다른 참사'는 과연 일어나지 않을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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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쪽의 보고서 중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638~645쪽)은 7쪽에 불과하다. 다음 차례로 적힌 '피해자 및 유가족 등에 대한 후속대책 마련(646~650쪽) 부분을 더해도 10쪽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내용면에서도 ▲안전관리 사각지대 해소 ▲보고 및 협력체계 개선 ▲재난현장 대응 내실화 ▲지자체 안전관리 기초 역량 강화 등 4분야로 나뉘어 간략하게 기술됐다.

전문가 공청회 과정에서 사용된 보고서가 수록된 부분(658~716쪽)은 자료는 상당했지만,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 각각이 정리한 자료를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특히 국민 모두에게 공개된 자료지만, 영어로만 적혀 있거나 전문용어 해설이 없는 부분도 다수 눈에 띄었다.


실제 국정조사 진행 과정에서는 55일 중 일주일가량을 남겨둔 지난달 10일 재발방지 대책 논의를 위한 전문가 공청회가 열렸다. 일주일은 섬세하고 체계적인 대안을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애초에 합의한 국정조사 기한에 짧았던데다, 국조 초반 국회 예산안 합의를 이유로 약 한달 간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던 탓이다.


물리적 한계는 전문가 공청회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조특위 일정 조율에 나섰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유가족이 참여하는 3차 청문회를 두고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급하게 전문가 공청회 일정을 잡아야 했다"며 "회의에 참여하는 전문가들도 급하게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청회 진행 중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진단을 내어놓았지만 짧은 질의 과정만 있었을 뿐, 특위 위원들과의 논의 과정을 통해 총체적인 결론을 내는 데는 도달하지 못했다.


청문 질의 과정에서도 질문 중 상당수가 참사 당일의 상황 확인에 집중된 반면, 향후 보완책은 매우 적게 다뤄졌다. 증인들의 대답도 "더 보완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전문가 공청회에 참석했던 국제보건 전문가 차지호 카이스트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결국 별도의 '상설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몇 주간의 국정조사로는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라며 “다른 나라들은 이런 조사들을 1~2년씩 진행하고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건강 영향 평가를 2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하고 있고, 앞으로 수십 년간 예산이 더 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독립적인 상설 조사 기구를 만들어서 계속해서 조사하고 연구해야 다른 재난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한 울산의대 교수는 경찰청 매뉴얼과 달리 이번 이태원 참사 당시 사망자들을 체육관에 잠시 안치해 신원 확인 후, 수용 가능한 수도권 영안실로 분산하면서 유가족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검시관이나 법의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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