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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급진주의가 환영을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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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 소킨 감독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1968년 시카고 대규모 시위·주동자 부당한 재판 조명
비민주적 재판 재현으로 트럼프 행정부 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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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8년 8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주목한다. 민주사회학생회(SDS), 국제청년당과 히피 연합(Youth International Party and Hippie) 등 신좌파 집단은 인근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로버트 케네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당하면서 휴버트 험프리의 대선 후보 당선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베트남 파병으로 비판받던 린든 존슨 대통령의 사람을 그들이 반길 리 만무했다.


리처드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대규모 경찰력을 대회장 안팎에 배치했다. 군인 수천 명도 대기시켰다. 시카고는 최루탄 연기와 시위대가 던진 돌들로 뒤범벅됐다. 사이렌과 공포탄 소리까지 뒤섞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미국인 수백만 명은 참혹한 광경을 안방에서 지켜봤다.

에런 소킨 감독은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 애비 호프만(사샤 배런 코언) 등 주동자 일곱 명이 받은 부당한 재판을 조명한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존 미첼(존 도먼)은 이들을 10년 이상 감방에 가두려 한다. 리처드 슐츠(조셉 고든 레빗) 검사는 얼떨결에 사건을 맡고 당황한다. "폭동을 누가 시작했죠? 시위대인가요? 경찰인가요?" "경찰은 폭동을 일으키지 않아." "증인들이 나올 겁니다." "그럼 거짓임을 증명해서 승소해야지. 그게 자네의 역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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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 주동자들은 사법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오히려 기본 인권마저 유린당한다. 시카고에서 4시간 머물다 폭력선동 혐의로 재판정에 선 보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 흑표당 공동 창립자가 대표적인 예다. 직접 무죄를 변론하다 결박당하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다. 청중이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줄리어스 호프만(프랭크 란젤라) 판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피고인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내 말에 수긍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라면 좌우로 저으세요."


비민주적 재판의 재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다. 기존 제도 파괴와 불확실성 조장, 무리한 애국 마케팅이 닮았다. 바탕에 자리한 편견과 혐오는 오늘날 단합과 평등의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호하게 인식돼온 법치주의의 중요성까지 구체화하는 추세다. 52년 전에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시민 대다수가 신좌파의 행동에 부정적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19%만 경찰 진압을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중산층은 전통적으로 급진주의자들에게 거부감을 보여왔다. 문제는 과격한 행동. 그동안 보였던 동정심마저 반감으로 바꿔버렸다. 중산층이 등을 돌리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토양은 굳어져버렸다. 급진주의자들이 파고들 땅은 더 좁아졌다. 19세기 말 헤이마켓 사건과 풀만 파업이 대표적인 예다. 노동자들의 과격한 행동이 적색공포로 이어지면서 10여년간 쌓아온 혁신주의 운동은 무너져버렸다. 중산층의 지지를 얻은 정부는 급진주의자들이 과격한 행동으로 나올 때마다 대대적인 역공에 나서 전세를 뒤집었다. 신좌파는 이런 역사를 잊고 있었다. 이상에 비해 역사적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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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킨 감독은 헤이든의 고백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누가 폭동을 시작했나요?"라는 변호사의 물음에 "우리 피"라고 답한다. 옆에 있던 호프만은 격분한다. "'우리 피를 흘릴 거라면 시카고 전체에 흐르게 하자.' 경찰들 피가 아니었어. 놈들이 우릴 때리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자는 뜻이었어!"


실제로 SDS는 정부의 강경 대응보다 중산층의 반(反)과격주의 정서와 내부 균열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은 빈민층이나 소수민족과 결합해 사회변혁 운동을 전개한 적이 없다. 사회ㆍ신분적 한계로 그들의 정서를 간파하지 못했다. 부유한 학생들과 불운한 젊은이들 사이의 간격은 냉엄한 현실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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