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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역사의 첫 장 '모토로라', 폴더블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최종수정 2019.11.20 06:57 기사입력 2019.11.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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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1983년 세계 첫 휴대전화 상용화…레이저 1억대 이상 판매
1990년대 휴대전화 시장 선도하다 '애플'에 밀려 中 레노버에 헐값 매각
레이저 본 딴 폴더블폰 '레이저2019' 출시 앞둬 모토로라 부활 기대

휴대전화 역사의 첫 장 '모토로라', 폴더블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1973년 4월3일 뉴욕 맨해튼 힐튼호텔 근처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벽돌만 한 크기의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전화기라면 있어야 할 연결선도 없이 번호를 누른 남성은 "조엘, 나 마틴이야. 지금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어.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 말이야"라고 말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전원을 꽂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을 아무것도 없는 길거리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 중년의 남성은 '휴대전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토로라(Motorola)의 발명가 '마틴 쿠퍼(Martin Cooper)'다. 마틴 쿠퍼가 한 통화는 휴대전화로 통화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3년, 모토로라는 마틴 쿠퍼의 발명품인 세계 최초 휴대전화 '다이나택8000X'을 출시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의 제2막을 열었다면, 모토로라는 휴대전화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한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26%를 점유하고 있는 애플이 지난 2014년 출시한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두 모델로 누적 1억 대를 판매한 것에 '대단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었지만, 모토로라는 2000년대 초반 '레이저' 단일모델만 1억300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폴더형 폰으로 기록되고 있다.

▲1973년 4월 3일. 인류 최초로 휴대폰을 사용한 모토로라의 엔지니어였던 마틴 쿠퍼

▲1973년 4월 3일. 인류 최초로 휴대폰을 사용한 모토로라의 엔지니어였던 마틴 쿠퍼


라디오 만들던 모토로라, 어떻게 '휴대전화'를 만들었나

모토로라는 처음부터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1928년 폴 갤빈(Paul Galvin)이 설립한 모토로라는 1930년대 차량용 라디오를 개발해 '모토로라'라는 상표로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1947년에는 공식 사명을 모토로라로 사용하면서 라디오 제작을 기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워키토키'라 불리는 무선통신기기를 개발했고, 1960년대에는 우주선의 통신장비를 제작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해 "인간의 작은 발걸음 하나지만 인류에게는 큰 발걸음"이라고 지구에 전달한 것도 모토로라가 개발한 우주 통신용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이처럼 라디오를 넘어 무선통신기기를 개발 중이던 모토로라는 마틴 쿠퍼를 만나게 된다. 1954년 모토로라에 입사해 쌍방향 자동차 무전기를 개발하고 의사들을 위해 병원 전체에 호출 시스템을 만들던 쿠퍼는 1967년 시카고 경찰서에서 받은 한 의뢰 때문에 휴대용 장치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카폰'으로 무전을 했는데 차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불편함을 느꼈고, 쿠퍼는 차에서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도 사용할 수 있는 탈착식 무전기를 개발했다.


이후 쿠퍼는 TV 영화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이 사용하는 금빛 플립탑(flip top) 커뮤니케이터에서 영감을 얻어 '휴대전화' 개발을 시작했다. 쿠퍼는 수년 간의 연구 끝에 세로 23cm, 가로 13cm, 두께 3cm, 무게 1kg의 휴대전화를 개발했다. 맨해튼의 한 빌딩 지붕에 기지국을 설치하고 마침내 1973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통화에까지 성공했다. 통화 상대인 '조엘 엥겔'은 당시 최고 라이벌이었던 AT&T의 연구·개발 부서 '벨 연구소'의 책임자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퍼는 휴대전화의 대중화를 위해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민간기업이 무선통신에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영역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설득해야 했다. 상용 휴대전화를 만들려면 인프라를 구축해야 했고, 제품을 출시하는 데까지 10년이 걸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휴대전화 역사의 첫 장 '모토로라', 폴더블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애플'의 등장으로 갈 곳을 잃은 모토로라

모토로라는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1위를 달리다 노키아의 등장으로 점유율 1위 자리는 내놓았지만 브이닷, 스타택, 그리고 레이저와 같은 히트상품들을 출시하면서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선도했다. 2000년 기준 총자산은 423억4300만 달러(약 49조원)에 달했고, 연 매출액은 375억 8000만 달러(약 44조원) 수준이었다.


그러다 애플이 등장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 오리지널을 출시, 2008년에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신호탄을 쏜 아이폰3G가 등장하면서 피처폰 점유율이 점점 떨어졌다. 그러다 2010년에는 연 매출 130억6400만 달러(약 15조원)로 감소했고 1억 4200만달러(약 166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만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몰락의 시작이었다. 모바일 부분의 부진으로 핵심 분야를 둘로 쪼개 모바일 산업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무전기 솔루션 분야는 모토로라 솔루션스로 분할했다. 기업 분할 뒤에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모빌리티 부문의 적자는 계속됐고, 결국 2011년 8월,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 한때 모토로라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모빌리티 부분은 고작 124억 달러(약 14조 5000억원)에 매각됐다.


구글은 3년도 채 안 돼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다시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구글의 인수금액의 4분의 1 수준인 29억 1000만달러(약 3조4000억원)였다. 레노버에 인수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하던 모토로라는 2016년 모토로라 브랜드의 로고와 모토라는 별명만 유지한 채 레노버의 하위 브랜드로 전환됐다.


휴대전화 역사의 첫 장 '모토로라', 폴더블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폴더블폰'과 함께 등장한 모토로라, 전설의 귀환 될까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은 1년 만에 번복됐다. 되레 모토로라 브랜드를 유지하고, 레노버의 스마트폰 브랜드인 주크(ZUK) 등을 없앤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토로라는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플더블폰 디자인 특허를 받았고, 최근 모토로라의 히트제품 레이저의 디자인을 본 따 만든 '레이저2019'를 공개했다.


6.2인치 화면비율 21:9의 플라스틱 OLED 패널은 좌우로 접혔다 펴는 방식의 삼성 갤럭시 폴드와 달리 위 아래로 여는 플립형 디자인이다. 1600만 화소 전면 카메라, 500만 화소 내부 카메라 등을 사양을 갖췄다. 갤럭시 폴드에 비해 화면이 좁지만 테블릿보다는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를 구현했다. 카메라나 성능은 갤럭시 폴드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은 1499달러(약 175만원)로 경쟁작보다 저렴하다. 갤럭시 폴드는 1980달러(약 228만원)다.


레이저2019는 내년 1월 공식 출시 예정이다. 1억3000만 대를 판매할 만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레이저의 부활 소식에 과거 모토로라 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저렴한 가격만큼 경쟁작에 비해 떨어지는 성능과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은 모토로라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게 업계의 반응이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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